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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말살
도서명
저자/역자
조지 오웰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07-03-30
독서시작일
2022년 08월 11일
독서종료일
2022년 08월 31일
서평작성자
공*솔

서평내용

 ‘1984’는 조지 오웰이 투병 중 집필한 소설로, 생애 마지막 소설이다. 1949년 출간한 이 책은 당시 시점에서 30여 년 뒤인 198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국가는 세 개의 전체주의 국가로 삼분됐고, 세 국가는 끊임없이 동맹과 배신 즉, 끝없는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또한 당에 의해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것을 감시 통제하는 사회다. 작중엔 자신을 밀고한 자녀를 잘 키웠다며 기특해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사고 자체를 통제하려는 이 위험한 시도는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 ‘과거’ 작중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현재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모든 기록을 조작함으로써 과거를 통제하려 든다. 둘째, ‘언어’ 기존의 언어를 말살하고,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 표현 등의 단어는 사라져간다. 셋째, ‘단순한 반복’ 텔레스크린을 통해 항상 단순하고 반복적인 내용을 송출하고, ‘증오 시간’을 설정해 ‘자유의지’의 성격을 지닌 인물을 향해 증오를 내뱉게 만든다. 이런 검열 덕에 작 중 대부분 사람은 자유뿐만 아니라 사고를 잊었다. 윈스턴 스미스처럼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고,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것처럼 대부분은 무의식까지 굴복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끔찍한 고문 앞에 과연 누가 버텨낼 수 있을까?

 아마 조지오웰은 이 책을 빌려 독재 그 자체보단 사고의 불능에 의한 공포를 말해주려는 것 같다. 저 세계에도 데카르트가 존재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데카르트가 떠올랐다.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직관과 연역을 기준 삼아 방법적 회의를 통해 명백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던 그는 어떤 사유든 의심받을 수 있지만, 사유한다는 사실과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했다. 작중엔 윈스턴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오브라이언의 ‘말’들을 부정했다. 사고 불능의 무서운 예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사례로 모두 알고 있다. 이를 두고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 명명했다. ‘나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아이히만.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그리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작품 속엔 우리 현실에서 있었던,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것과 유사한 사상 통제 방법들이 나온다. 대중 심리를 선동하는 괴벨스의 선전 전략과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그렇다. 이런 것들이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가 작품에 나타난 듯하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작품을 마냥 소설 속 허구로 끝내고 말 것인지에 관해선 생각을 해봐야 한다. 지금 우린 20세기 제국주의와 냉전을 지나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살고 있다. 또한, 무수히 많은 정보의 세상에서 살고 있음과 동시에 대부분의 경우 비대칭적 정보 하에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린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의견인지 명확한 구분이 가능한가? 틀린 사실은 고쳐나가면 되고, 다른 의견은 조율해나가면 된다. 하지만 사실과 의견을 교묘히 섞은 것은 개선의 여지 그 자체가 불확실하다. 얼마 전, 지지율 관련 기사를 접했다. 1,000명 대상 조사 결과, 지지율이 낮다는 사실로 쓰인 기사였다.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 그 끝엔 응답률 약 11%라는 사실이 짤막하게 달려있었다. 1,000명 중 110여 명이 응답한 수치를 객관화해 전체를 대변하듯 기사를 쓰는 것이 사실에 가까운지, 사실에 의견을 섞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세상엔 무수히 많은 사실과 의견이 정보라는 집합으로 묶여있다. 무엇이 좋은지 또는 옳은지 따지는 것보단 그 이유에 대해서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그것이 타인이 역류를 일으킬 때, 자신의 순류를 유지함으로써 그의 처지에선 역류가 되는 즉, 온전한 \’나\’ 자신을 지키고 아끼는 방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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