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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와 시간의 증언, ‘편지’
저자/역자
정용욱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21-02-25
독서시작일
2022년 12월 08일
독서종료일
2022년 12월 08일
서평작성자
김*지

서평내용

편지로 보는 점령기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해방’을 맞이한다. 이후 1948년 8, 9월까지 남과 북에는 서로 다른 정부가 수립되며, 또한 북위 38도선 이남을 미군이, 이북을 소련군이 점령하게 된다.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은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점령기’를 지냈던 시기에 오간 편지들과 그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는 당시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 안에는 김구가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보낸 편지, 일본인이 미군에 보낸 편지, 오병철이 하지 사령관에게 보낸 편지, 이승만이 밀러드 굿펠로에게 보낸 편지, 주요한이 하지 중장에게 보낸 편지 등 다양한 편지가 가득 담겨있다. 많은 편지 중에서도 흥미롭게 읽었던 편지는 “일본인이 패전 후 점령기 동안 점령 당국과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편지”와 “1947년 서울 인사동에 사는 한 여성이 미국 대통령 특사로 남한을 방문한 앨버트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보낸 진정서” 등이 있다. 이렇듯 유독 마음에 남았던 편지와 그 내용을 가지고 해방 이후의 일본인, 점령기 당시의 여성에 대해 적고,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게 됐던 ‘어떤 편지가 역사가 되는지’에 대해서도 차례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편지로 보는 점령기 일본인과 재일 조선인: 발신자 일본인

일제의 패망 이후 미군이 일본을 점령한 시기에 ‘일본인이 보낸 편지’는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 편지 중 하나였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부끄럽게 되는 지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인의 편지’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 전체에 대해 막연하게 씌운 ‘이미지’가 있었다. 이를테면 그 당시 일본은 ‘식민지 기간’ 동안 벌였던 반인도적인 범죄행위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해자로서의 일본’만을 내세웠다는 점이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보이고 있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 역시 자신들의 ‘전범 행위’를 포함하여 한반도 내부에서, 그 밖에서 ‘조선인’에게 저지른 일들에 대해 사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인, ‘일본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모습으로 조선인을 대하지 않은 것처럼 해방 이후 그들의 태도 역시 모두 같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았겠지만 현재 한국에 사과하고 역사를 바로 설명하려 하는 ‘양심 있는 일본인’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잘 알고, 제대로 알고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해방 이후 미군에 점령의 기간을 겪고 있던 ‘일본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 적힌 한 줄일지라도 그저 읽고, 생각없이 수긍하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히게 한 사건과 사료를 찾아보며 스스로 생각해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장의 “미군에 보낸 일본인 편지”에서는 일본인들이 패전 후 미군 점령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드러난다. 다른 것이 아니라 ‘편지’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생각이 더욱 ‘날 것’ 그대로 보여지기도 한다. 생각하건대 그 ‘날 것’이 편지가 아니라면 알 수 없을 ‘무언가’가 담겨있는 지점일 것이다. “일본인들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타민족을 가해하거나 가해에 가담했던 것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의 자각이나 진지한 반성”이 없는 것, “민족의 우월의식”이 잔존하고 있는 것, “패전 직후 경제적,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과거 식민지인들에게 전가하려”한 것이 당시 일본인들의 ‘날 것’의 모습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에 잔류한 조선인들은 억압과 차별, 멸시의 대상의 처지에 놓여있었음을 다시 한번 다른 시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편지로 보는 점령기 여성: 발신자 여성 정문자

그다음으로 재밌게 읽었던 편지는 “1947년 서울 인사동에 사는 한 여성이 미국 대통령 특사로 남한을 방문한 앨버트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보낸 진정서”이다. 편지의 내용을 보면 느낌표(!)가 많은 것이 보이는데 이 부분에서 정문자라는 여성이 절박하고 강하게 주장하여 원하는 바가 분명하게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1947년 8월 서울에서는 신변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이러한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편지에는 편지를 쓴 날짜, 편지를 보내는 이의 주소, 그리고 이름이 분명하게 적혀있다. 이 편지가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도 바로 이러한 상황이 배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편지를 보낸 여성이 전국이 ‘테러 공포’에 휩싸여 있는 지금 ‘용감하게’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밝히고 편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그녀가 편지에 간절히 적은 요구는 이루어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분명하게 그녀가 누구인지, 어떤 일생을 보내왔고 그 과정에서 이 편지를 작성하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편지의 내용과 그 편지가 작성된 시기의 사회 모습을 가지고 ‘정문자’와 그녀의 편지에 대해 추론해보는 과정이 호기심과 흥미를 돋우었던 것 같다.

또 여성은 아니더라도 1947년 당시 한국인들이 웨드마이어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다. 1947년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당시 한국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테러 단체의 해체”, “미소공위 성사를 통한 정부 수립”, “경찰 책임자와 테러 수괴의 처단”, “정치범 석방” 등의 주장을 펼친 편지가 많았고 이러한 논조로 쓰인 편지들은 대부분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소개된 ‘한 여성’의 편지가 보다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떤 편지가 역사가 되는가?

여태까지 보다 더 익숙하게 접하고, 또 읽어봤던 사료라 하면 법령, 포고령, 헌법, 연설문과 같은 것이 많았다. 사료를 읽으면서 그 시대만의 언어로 한 시대를 살펴보는 일은 재밌는 일이지만 ‘편지’는 그보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고 느껴진다. 아무래도 편지가 다른 사료에 비해서는 보다 사적이고 보다 포장되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인 것 같다. 물론 아닌 편지도 있다. 사회적 소통의 수단으로 편지가 사용되기 때문에 편지는 개인과 개인 간의 의사소통 수단인 것도 맞지만 동시에 공식적인 업무상 필요에 따라 작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편지는 공문서의 일부로 취급된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이 적인 편지는 사적인 영역을 반영한다. 이러한 부분에서 편지는 재미있는 ‘사료’인 것 같다. 특히 개인 간에 작성된 편지는 더욱 그렇다. 분명 개인이 자신의 심정과 상황을 담아 작성된 것인데도 그 편지는 시대의 상황과 처지를 반영하고 있다. 개인이 주장하고 지향하는 ‘어떤 것’이 적혀있는 것임에도 그 요구는 시대의 요구와 맞닿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 그 개인이라는 존재가 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는 ‘아주 많은 편지가 존재할 것 같은데 그중에서 어떤 편지가 역사가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책을 읽고난 뒤에는 어떤 편지 하나가 역사가 된다기보다 그 편지가 또는 일기가, 자서전과 같은 개인의 기록들이 역사의 한 부분을 설명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자세히 살을 붙여주고, 단순히 집단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미 설명된 역사적 사건을 또 한 번 다른 목소리로 ‘증언’해주는 것이다. ‘편지’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료를 통해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로 한 시대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 편지를 읽는 것은 분명 장점이 될 것 같다.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 속에서는 그 당시 실제로 어떤 편지는 수취인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수취인불명’이 된 편지는 현재 우리에게 전해져 역사를 증언하고 그 속에서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한 세기를 지나 먼 길을 돌아 결국 전해질 곳에 도착한 것이다. 어떤 편지가 의미있고 어떤 편지가 역사에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건지 아직 잘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떤 편지는 그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편지든 그 시대와 관련지어서 유심히 보고 꼼꼼하게 읽고 분석해보는 것이 아닐까?

20세기로부터 온 편지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을 읽으면서 여러 주체가 또 다른 주체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단순히 ‘공문서’와 같은 편지가 아니라 개인이 사사로이 적은 편지들도 읽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점령기’라는 시대를 보다 가까이서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부분이 ‘편지’가 주는 사료로써의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통해서 당시 한국인들이 해방과 점령을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고 있었는지, 시대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었는지와 같이 그 시대의 여러 주체들의 생각과 행동을 ‘날 것’의 시선과 언어가 설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편지 한 장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편지에는 당연히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편지를 쓴 발신인과 그것을 받을 수신인은 그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이므로 그 시대의 여러 가지를 구태여 덧붙일 필요가 없다. 편지 속에 숨겨진 시대의 가치와 사람들의 요구와 각 주체의 입장은 지금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지난 세기로부터 온 우리 세기로 발송된 편지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점령기’로부터 온 여러 편지에 대해, 그 편지 속에 담긴 시대의 시간, 공간, 활동 그리고 여러 인간과 그들의 열망을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에서 보다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여전히 편지 몇 장은 우리에게 모든 역사를 설명해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편지는 많은 시간과 사람의 역사를 품고 있다. 아마 이것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편지’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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