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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아는 삶
저자/역자
올더스 헉슬리
출판사명
문예출판사
출판년도
2018-03-20
독서시작일
2022년 09월 20일
독서종료일
2022년 09월 25일
서평작성자
최*연

서평내용

소설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 볼 만한 주제들은 많았지만 책을 완독한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멋진 신세계가 전달하고자 하는 큰 주제는, ‘쾌락의 통제로 인해 자아를 잃고 종속적으로 살아 가는 삶’이다. 내가 우리 사회가 멋진 신세계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 것도 이 지점에서였다.

멋진 신세계와 우리 사회 모두 사람들이 부작용없는 쾌락을 가장 우선의 가치로 추구한다는 것이 큰 공통점으로 느껴졌다. 이것이 멋진 신세계에서는 대표적으로 ‘소마’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현대 사회에서는 ‘매체’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캔슬 컬쳐(cancel culture), 부끄러움의 자각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약자를 혐오하는 일에 동조하는 것 등 공통점은 \’매체’를 매개로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비난하는 것에 집단적으로 몰두하고 이에 대해 합리화하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은, 멋진 신세계 속 정부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마’와 달리, 이는 개인이 또 다른 개인에게 또다른 개인이 더 많은 개인에게 자발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즐거움은 ‘소마’와 마찬가지로 그 어떠한 ‘피폐’도 ‘죄책감’도 남지 않는다.

그럼 멋진 신세계처럼 ‘조건반사교육’, ‘수면시 교육법’ 등의 철저하고 갖은 통제 하에도 있지 않는 현대 사회 사람들이, 멋진 신세계 사람들과 같이 이러한 쾌락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 일까? 난 그 이유가, 더이상 ‘어떤 것’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의 태도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단순한 ‘즐거움’보단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에 보고 ‘공생’이라는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면, 한 번에 실수에 매서운 비난보다는 다정한 비판이 우선될 것이다.

존이 레니나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조건반사교육을 받은 레니나의 사랑에는, ‘본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등으로 자신 나름의 ‘사랑’의 의미를 알고 있는 존이 성적 유희가 목표인 레니나의 사랑을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본질을 모르면 주체 또한 형성될 수 없다. 멋진 신세계처럼 굳이 통제받지 않는 사회에서도 ‘본질’을 모르면 사람들은 고유한 자아를 가지지 못한채 어딘가에 종속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우리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본질’들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본질, 사랑의 본질… 의미를 찾아가다 되려 우울해질 수도 있겠지만, 이를 모르는 억압된 ‘나’보다는 슬픔과 우울을 아는 진짜 ‘나’가 되고 싶다. 통제로 가득한 세계에서 적어도 스스로의 결말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간 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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