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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과 진정한 행복
저자/역자
올더스 헉슬리
출판사명
소담출판사
출판년도
2015-06-12
독서시작일
2022년 03월 07일
독서종료일
2022년 06월 13일
서평작성자
정*환

서평내용

  <멋진 신세계>는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과학지상주의 세계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멋진 신세계> 속 ‘문명인’들이 사는 사회는 과학기술과 자동화로 이루어졌다. 얼핏 보았을 때, 과학기술과 자동화는 편의를 제공하여 인간이 예전보다 질 높은 삶을 살아가도록 기여했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인간은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현대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는 유전자 복제, 유전자 조작이 그 예시다. 시험관에서 조작되는 태아, 태아를 세뇌시키는 세뇌교육 등 이 모두는 통제된 자유를 ‘진정한 행복’으로 인식시키고 있다. 과학기술의 양면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배경에서 저자는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 했을까.
  문명국이 추구하는 핵심가치는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다. 여기서 안정이란 사회적 안정을 의마한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은 선천적으로 주어진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에 따라 각기 다른 세뇌교육을 받는다. 자신의 계급에 만족감을 느끼고 사회의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맡은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세뇌교육은 창조적인 사고를 억제하고 주체적 또는 주도적 삶을 방해하는 수단이다. 문명국은 ‘소마’라는 약을 배급한다. 소마는 소량만 섭취해도 쾌락을 느끼게 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와 절망감을 일시적으로 해소시켜 주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다양한 감정을 억제시킴으로써 사회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사회에 회의감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야만인 존은 문명국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인물이다. 베타 계급인 어머니 린다와 존은 함께 뉴멕시코 보호구역에 버려진다. 존은 문명국에서도 반사회적 가치를 가진 존을 부정하고 유희거리로 인지한다. 존은 주체적 선택과 불행할 권리를 주장하며 통제된 자유와 행복을 부정한다. 멋진 신세계 자체를 부정했지만 결국 존도 문명국의 압력에 굴복한 모습을 보이며 세뇌된 집단의 광기를 보여준다. 존은 레니나를 사랑하지만 문명인의 가치를 지향하는 그녀를 혐오한다. 육체적인 사랑만을 지향하는 레니나, 정신적 사랑을 지향하는 존의 모습을 통해 문명국과의 대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거짓된 행복을 주는 소마를 보며 ‘인위적으로 형성된 행복은 진짜 행복일까?’라는 의구심을 드러낸다. 오늘날 SNS에서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찍어 기록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다. 고심 끝에 한 사진을 골라 SNS에 올리고 타인들의 반응을 살펴본다. 이러한 반응에서 불쾌감을 느끼거나 쾌락을 느낀다. 타인의 시선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거짓된 행복은 끝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공허함만이 남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정의하는 행복도 진정한 행복일까? 흔히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꿈꾸는 감정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역시 사회의 틀에 맞추어진 그럴듯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문명국의 사람들은 멋진 신세계에서 추구하는 핵심가치를 지키며 살아갔다. 핵심가치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정의내린, 절대적 행복인 것이다. \’유미의 세포\’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주인공 앤더슨이 행복만을 느끼게 하기 위하여 기쁨이가 다른 감정들을 통제한다. 말미에서야 다른 감정들도 존재해야 함을 인지하고 앤더슨은 진정한 행복을 깨닫는다. 이 영화와 <멋진 신세계>의 공통점은 단편적인 감정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존이 ‘불행할 권리’를 역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좌절이나 불행을 겪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도 공존해야 진정한 행복을 인지하고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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