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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가치
저자/역자
올더스 헉슬리
출판사명
소담출판사
출판년도
2015-06-12
독서시작일
2021년 09월 01일
독서종료일
2021년 09월 30일
서평작성자
임*민

서평내용

서론  

영국의 문학가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가 『멋진 신세계』를 출간하였던 근대 후기는 인간 이성의 꽃이라 불리는 수학, 물리학, 철학의 학문이 만개했던 시기였습니다. 이에 따라 관련된 산업과 과학의 발전 또한 가히 엄청났는데, 그중 산업의 중심에는 『멋진 신세계』의 진리라 불리는 미국의 경영가 헨리 포드 Henry Ford가 있습니다. 포드는 자동차 생산량의 제고를 위해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및 ‘포디즘’이란 경영 체계를 형성하며 물품의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또한 과학의 진보는 전 세대인 중세 시대의 진리였던 종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두 분야의 진보는 인류의 삶을 한층 더 발전시켰지만, 각각 인간의 ‘본질’ 그리고 ‘종교의 필요성’을 평가절하 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소설 『멋진 신세계』는 이러한 당대 현실을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시대로 표현하여 비판하고 있습니다. 필자 역시 당대 \’과학 만능주의\’에 대해 문제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작품 속에 나타나는 상황을 철학을 통해 해체할 것입니다.

1. 실존주의와 문명세계 

『멋진 신세계』의 세계관에서는 가족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여성들이 자연 분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출산의 역할은 인공 부화 시설에서 정부가 고안한 고도의 시스템에 의해 관리된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부화 과정에서 아이들은 신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지능 그리고 미래에 가지게 될 직업까지 모두 사회의 요구와 기준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계급은 가장 높은 계층인 알파부터 베타, 감마, 델타 그리고 엡실론까지 5계급으로 나뉘며, 부화 시설의 공정은 태교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혈액과 산소의 양을 조절하여 계급에 맞는 특징을 지니게 한다. 구체적으로 계급이 높아질수록 우월한 신체적 특성과 높은 지능 그리고 사회적으로 높은 중요도의 직업을 가지게 된다. 

  앞서 언급한, 이 모든 부화 과정은 한낱 과학 시스템에 의해 도구처럼 인간의 본질을 고정하는 오만을 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유일한 존재라고 언급하였다. 이 구절의 의미는 도구와의 차이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사르트르에 따르면, 도구는 고정된 역할(본질)에 따라 만들어지는 ‘직자 존재’인 반면, 인간은 도구처럼 고정된 본질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 아닌 존재이며, 또한 인간은 ‘신’이 아니라면 본질을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은 자유롭고, 실존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대자 존재’이다. 그렇기에 실존주의 관점에 따르면 소설 속 사회 시스템은 이러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인 자유 의지를 박탈하고 인간의 가치를 폄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 과학, 교육, 그리고 종교

  아득히 먼 과거, 원시 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아왔습니다. 인류는 여러 이유로 종교를 필요로 하여 소환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에 의하면 나약한 인간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형언할 수 없는 자연과 필연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지 못하였고, 그렇기에 절대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숭배하며 위와 같은 공포로부터 탈출구를 찾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문명 세계에서는 종교가 지배층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거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문명 세계의 인류는 어떻게 종교로부터 독립할 수 있게 된 것일까요?

  먼저 종교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방법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근본적으로 인간에 내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이 감정을 제거하는 첫 번째 방법으론 사회가 죽음에 대한 통념을 바꾸는 것입니다. 현실 세계와 달리 문명 세계에서는 죽음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 이유는 문명 세계 속의 인류는 모두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코 앞에 둔 시한부들이 입원해 있는 대형 병원에서 수많은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죽음에 대해 길들여지는 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실 세계의 병원과는 달리 소설 속 병원에서는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와 부드러운 버베나의 향기를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흐리게 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죽음이 가진 부정적 속성은 제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방법은 원주민 보호 구역의 인간들과 달리 문명 세계는 인류가 특별한 시술을 통하여 평생에 걸쳐 20대의 피부와 외형을 유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위적인 노화 방지를 통해 자신이 늙고 있다는 인식을 흐리게 하고 죽음이 다가온 다는 감각을 흐리게 해 주었습니다. 세 번째 방법은 고독에 대한 통념의 변화입니다. 소설 속 무스타파 몬드 총통에 따르면 사회의 시스템은 철저하게 고독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독은 셀 수 없이 많은 철학적 생각과 체제에 비판적 사고를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배층들은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최면을 통하여 인간이 고독을 반사적으로 피하게 만들었고, 주기적인 포드 사교모임, 그리고 사회의 슬로건인 공동체, 안정성, 동일성은 사회적 통념을 더 굳건히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요소는 ‘소마’입니다. 소마는 문명 세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과학 기술로, 독일의 경제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가 언급했던 종교의 의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유하고 종교는 지배 계층이 노동 계층을 제자리에 붙들어주고 현실의 부조리함으로부터 오는 통증들을 마비하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소마도 이를 복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기회와 쾌락을 제공하고, 이를 거부하는 자에겐 문명 세계가 지닌 부조리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명 세계의 인류들은 쾌락에 짓눌려 소마를 복용하고 비판적 사고와 성찰의 기회를 지배층에게 자진하여 반납해버린 안타까운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비판적 사고와 실행력 있는 행동을 통해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전체주의의 그림자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3. 문명 세계의 사랑관

  문명 세계의 레니나와 원주민 보호 구역 출신 존은 서로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에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둘은 자란 환경에 기인하여 추구하는 사랑의 방식이 다릅니다. 먼저 원주민 출신 존은 가벼운 사랑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의 저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마음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을 원합니다. 그에 반해 문명 세계 출신 레니나는 과거부터 진실된 사랑과 동일한 상대를 4개월 이상 만나는 것에 대해 세뇌를 받아 반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진실된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둘의 관계는 무너집니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문명 세계의 시스템이 조금은 원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필자가 ‘플라토닉 러브’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의 육체적 교류 역시 사랑의 과정에 있어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명 세계와 레니나의 방식은 앞서 언급한 소마처럼 자극적이고 간단한 쾌락의 추구로만 보입니다.(앞서 고위직의 관료들과 쉽게 사랑을 나누는 것과 페니와 레니나의 대화로 미루어 봤을 때)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플라톤 plato이 언급한 것처럼 상대방의 영혼과 나의 영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한층 더 내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헉슬리가 이러한 소설 속 배경을 설정한 의도는 독자에게 사랑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론

  소설『멋진 신세계』는 1932년 사회의 주류 가치관이라 불렸던 이성, 효율, 통제, 그리고 과학 등에 대해 \’문명 세계\’와 \’원주민 보호구역\’을 상정하여 당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헉슬리가 우려했던 당대의 가치관들은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세계 대전과 이성에 대응하는 해체주의 기반 예술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맹목적인 과학의 발달은 행복과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을 줄 수 있는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필자는 행복이 우리가 늘 누리고 있는 가치인 자유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철학을 구축할 수 있는 자유.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가요? 작품 속 문명 세계와 달리 우리에겐 생각할 수 있는 고독과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 본 비평문이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서평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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