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뉴스중에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제일먼저 북한의 전쟁위협, 일본과 관계된 과거사 이야기, 그리고 정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일본과 관계된 과거사 이야기는 단연 독도문제와 위안부문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을 하여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그리고 아직도 위한부 문제는 끝나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주관하는 인문학 특강에 윤미향이라는 분의 ‘위안부’관련 강연도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주제를 정하지 못했던 나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강연을 들은 친구들이 ‘위안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고 하면서 ‘25년간의 수요일’을 읽어 보라고 나에게 권유를 했다. 마침 역사책 서평쓰기 목록에 추가도 되었고 해서, 역사 수행평가를 통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소하게 들리는‘위안부’이야기
흔히들 ‘위안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안부’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 끌려가서 고생하셨다”라고 말하거나 나와 같이 “일제강점기때 남자들이 전쟁에 동원되었던 것처럼 여성들도 전쟁에 동원 되었던 것이다.”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위안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25년간의 수요일’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내 머릿속은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위안부’를 풀이해보면 위로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성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름이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여도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위안부’라는 말은 일제의 강제 징용정책 중 일본군의 성 노예제도를 의미한다. 그것의 의미를 알고 난 후, 일본군들이 저질렀던 만행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일본군들은 거리에서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납치하거나 일자리를 가짐으로 인해 돈을 많이 벌어 가족들에게 돈을 부쳐줄 수 있고 공부할 곳도 있다는 등 온갖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위안부’ 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일본군인들은 조선의 어린 여성들을 상대로 하루에 적게는 5명 많게는 40명이 집단 강간을 당했으며, 성노리개로 살면서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임신을 하게 되면 일본군들은 활용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소녀들은 총살을 시켜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총살을 당하지 않으면 낙태를 시켜 다시 위안소로 돌려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성병에 걸리거나 결핵, 말라리아등에 걸리게 되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폭행을 당하였다. 중국 상하이 주둔지에서 군의관을 했던 일본인이 자신의 일지에 “조선에서 연행되어 온 여성들은 일본 사병들의 성 배설을 위한 위생적인 공중변소”였다고 하고 “사병들에게 내린 천황의 선물”이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내용들을 통해서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꽃다운 어린나이에 일본군들에게 자유까지 뺏기고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 예측이 된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에서는 ‘대한 독립 만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위안부’ 소녀들은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단지 일본군들이 갑자기 차를 타고 사라졌다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일본군들은 ‘위안부’들이 군사 비밀을 폭로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사살하거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난 경우가 있었다. 이렇게 죽을 고비를 몇 차례 견디고 마침내 우리나라에 땅을 밟기는 했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고향에 가봤자 가족들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안부’ 합의 문제
앞서 말한 것처럼 ‘위안부’에 대해 알게 된 후 한참 뛰어놀 소녀들이 일자리라든지 돈을 벌수 있다는지 등에 현혹되어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내 나이에 ‘위안부’가 되어 일본군에게 강간당하고 성노리개로써 살아갔다는 것이 끔찍한 일인 것같다.
이것을 통해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대사관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수요시위를 하고 계시는데 할머니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가 있다. 1990년에 일본 정부가 ‘위안부’제도에 대해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걸 들으셨던 김학순 할머니께서는 최초로 공개 증언에 나서셨고 그러다가 많은 할머니들께서 공개 증언을 하셔서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위안부’ 문제가 크게 확산이 되었다. 일본 정부는 꾸준히 부인해 오던 몇몇 사안에 대해 정부의 관여를 인정했으나 강제성은 없었다며 법적 책임도 없다고 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에는 부인하고 보상에 대응하게 되었는데 이 보상을 국민기금이라 불렀다. 국민기금은 쉽게 말해서 ‘배상금’이 아닌 ‘위로금’이라고 볼 수있다. 즉, 일본정부들은 그 문제에 대해 범죄임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상에 대신하는 조치’로써 ‘법적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때 ‘위안부’ 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를 했었다. 그러나 합의된 ‘위안부’ 문제는 사실 피해자들 즉,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은 채 졸속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라며 피해자들은 무효라고 외치셨다. 할머니들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예요! 내가 원하는 것은 정의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할머니들은 일본정부의 공식사죄를 원하고 거기에 따른 법적 배상을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일본정부는 ‘위안부’ 합의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 했다는 식으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 얘기하여 ‘위안부’의 합의 문제를 해결했고 일본 측에서 돈도 지불했는데, 그 후에 다시 처음부터 재협상이라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다”라며 논란을 일삼고있다. 이 문제를 다시 재합의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한국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당사자이신 ‘위안부’ 할머니분들이 이 문제를 받아들이시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해결해 나갈려고한다.
일본 정부들의 주장을 보면 공식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눈꼽만큼도 없어보이고 합의를 했다는 핑계로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이를 통해 일본정부가 억지스럽고 양심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일본대사관에서 수요시위를 지켜보았던 나라면 매주 수요일마다 시민들과 같이 시위에 참여하는 할머니들을 보았다면 가능한 빨리 공식사과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나 또한 시간이 된다면 일본정부가 공식사죄와 법적책임을 지고 배상금을 지불하게 하기위해서 수요 시위에 참석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군들의 만행을 졸속으로 합의한 것은 그냥 넘어갈수 없는 일이다.
소녀상의 숨겨진 의미
1학년 겨울방학때,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 다녀 왔었다. 비록 하룻동안이었지만 그 하루라는 시간동안 많은 곳을 다녀왔는데.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도 보고왔다. 우리는 주말에 다녀왔기에 매주 수요일 개최되는 수요집회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다. 소녀상에는 털모자가 씌워있었고, 목도리도 있었으며 손에 핫팩도 올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소녀상은 비록 동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따뜻함과 관심이 느껴졌었다.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000차 수요집회 때 세워졌다고 한다. 전쟁의 아픔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다. 우리 시에도 2015년 1월에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울산대공원 동문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그런데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묘사했는데 평범한 소녀로 보이는 동상이지만 사실 숨겨진 의미가 각각 있다. 먼저 단발처럼 보이는 머리카락은 자세히 보면 뜯겨지고 거칠게 잘린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된 모습을 표현한다. 그때 당시 조선 소녀의 머리카락은 신체 일부분이라 생각해 함부로 자르지 않았다. 소녀상의 얼굴은 보면 조선소녀의 단호하면서 굳은 의지가 나타날 수 있도록 표현하였고, 그리고 어깨위에는 새가 있는데 세상을 뜬 할머니들과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할수 있다. 또한 꼭 쥔 손은 무례한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는 것을 상징하고, 발도 보면 발꿈치가 들린 맨발이다. 보통 발꿈치가 들려있다는 것은 심리상태가 불안하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 고향에 돌아와도 편히 정착하지 못한 할머니들의 방황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소녀상 옆에는 의자가 하나 배치되어있는데 세상을 뜬 할머니들의 빈자리라고 할 수 있고, 지금 우리가 소녀와 함께 앉아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 동상 뒤쪽을 보면 깨진조각들로 이루어진 그림자를 만들어놓은 것을 확인할수 있는데 힘들고 고통스러운 할머니의 삶을 표현했다.
이렇게 소녀상에 대해서 숨겨진 많은 의미가 있었는데 나는 그 때 당시에 소녀상의 실제 숨겨진 의미를 알지 못해 그저 평범해보였던 동상이라 생각하여 발걸음을 돌려 다른 곳을 향해갔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위치해있고 수요시위까지 하는 것을 보았을 일본정부는 그것에 대해 침묵을 하고 무관심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러다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박근혜정부때 ‘위안부’문제에 대해 해결하기 위해 합의를 하였다. 최근에는 일본정부가 우리에게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언급하였다. 그들은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를 했으므로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 합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은체 졸속으로 합의한 것이 때문에 무효이고, 재합의를 해야한다. 단순히 돈으로 해결될일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원하는 대로 공식사과를 하고 법적배상도 해야만이 진정한 것이다.
위안부’는 어쩌면 전세계 여성들의 피해의 일부일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만 잘 알고 있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전쟁과 여성 인권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 들어보았겠지만 이 전쟁에 폭격에 의한 사망자나 부상자도 많았지만, 민간인 학살 피해도 심각한 문제였다. 특히 여성들이 강간피해를 많이 당했는데, 그 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당시 한국군도 일본군과 다를 바 없었다는게 느껴지는데, 베트남 여성에 대한 가혹행위를 벌이는 등 성폭력과 한국군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결국 우리는 베트남전쟁에 있었던것에 대해 사과는 했다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문제에 대해 그냥 침묵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양국 정부는 경제적 실익을 위해 이러한 역사를 덮어두고 있고 누군가를 학살하고 전쟁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은 침묵을 하고 있다. 국가의 명예와 이익에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발전적으로 해결해 나가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에 관한 문제도 함께 극복해나가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현재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남성들은 전쟁속에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겠지만 여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아마도 위안부 때의 일처럼 전쟁속에서 여성들은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집단성폭력과 살해를 당하고 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자꾸 벌어질까? 여성들은 전쟁에서 때로는 물건처럼, 남성들에게 증오를 풀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세계분쟁지역에서 성범죄는 끊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향에 돌아왔을 때 버림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이미 여자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빼앗긴 여성’이라는 생각 때문일수 있다.
다른나라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는 가부장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역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많은 논란이 되고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그 이유는 수요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용감하고 정의를 아는 사람들이 이 여성들을 권리를 되찾아주기위해 힘써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항상 우리나라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옛날부터 남성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해야하고 여성은 약한 존재이며 집에서 집안일이나 해야 한다는 것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우리나라 역사속 인물들을 보면 남성들의 업적이 여성보다 훨씬 비중이 높고 많이 기록되어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인물은 유관순열사나 신사임당 등 밖에 생각이 안나는 만큼 여성들에 대한 기록도 많이 부족하다. 이러한 관점이 우리의 역사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원래 위안부나 다른 전쟁도 마찬가지지만 전쟁중에 일어난 강간과 폭력을 일본처럼 정당화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25년간의 수요일’을 읽고 평소 뉴스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언급된 것이 일본정부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져 볼 필요가 있었고 사실은 제대로 해결되어야하는 과제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위안부가 무엇인지 잘 몰라 뉴스에서 할머니들이 무엇때문에 일본에게 사과를 못 받아서 울고 고통스러워하는지 알지못했다. 위안소에서 그때 당시 소녀들은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성폭력을 당하는 등 꽃다운 나이에 안타까운 일이 벌어져있었고, 지금까지 정신적․신체적 고통은 계속되어 왔다. 지금 내 나이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끔찍할정도로 위안부에 대한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 정부는 원래 이 문제에 대해 전쟁중에 일어난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피해자할머니들은 졸속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무효라며 재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할머니들께서 일본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사죄하는 것 뿐이고, 거기에 법적 책임을 지고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것이지 단순히 국민 기금이라는 위로금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사건에 하나인 것 같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은 아니더라도 수요시위에 참여해 할머니들과 같이 주장하는 시위를 펼쳐서라도 할머니들이 원하시는 바를 이루게 해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