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한 학생을 죽인 남자와 죽은 학생, 영훈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현재의 시점이 번갈아 제시된다. 남자는 교도소에서 머리를 맞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상태인데, 영훈의 어머니는 남자에게 기억을 되찾을 것을 요구한다. 기억이 조금씩 돌아올 때마다 사건이 일어난 그 날이 서술된다.
영훈의 어머니는 어쩐지 남자를 자신이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라며 엄마라고 부르라고 하지만, 남자는 꿋꿋이 아주머니라고 부를 뿐이다. 아주머니는 남자가 번호를 바꿀 때마다 찾아내서 전화하고, 이사를 가는 곳마다 찾아내서 그 주변에 남자가 전과자라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겉으로 챙겨주는 것 자체가 뒤틀린 모성애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는 소문을 내어 남자가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고등학생 때 영훈에게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물론 살인은 어느 경우에서나 정당화되어서는 안 되지만 남자에게도 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영훈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학교폭력 사례에서 가해자의 부모들의 흔히 말하는 진술인 ‘저희 애는 그럴 애가 아니에요.’라며 말이다.
이야기는 영훈의 어머니가 남자를 죽임으로서 끝을 맺는다. 남자는 영훈의 어머니로 하여금 살해될 것을 예상하고 죽기 전에 동영상 하나를 남기게 된다. 동영상의 내용은 자신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말했던 진술이 모두 거짓이라는 내용이다. 남자는 거짓을 남기고 죽었다. 남자는 죽기 전까지 영훈의 어머니를 생각한 것이다. 영훈의 어머니는 ‘난 정말 잘 지내요. 진실이 밝혀졌잖아’(154)라며 끝까지 자신의 아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믿으며 자신이 악을 척결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어머니의 남자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자신의 아들은 결백하다는 지나친 확신에 찬 모습들에 씁쓸한 감정이 일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버리고 그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가 되는, 이러한 비극만이 순환되는 고리에서 남자는 벗어나지 못했다. 남자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가 그 피해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 가해자가 되었지만, 피해자였던 가해자는 또다시 피해자가 되며 생을 마감했다. 반면 가해자는 끝까지 가해자로서 머무르며 뿌듯한 감정만 가질 뿐이다. 어떠한 사건에 대한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은 반드시 권력에 따라 움직인다고 봐도 무방하다. 진실이라는 현상을 받아들일 때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