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마녀들』은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운동을 바탕으로 기존의 한국전쟁에 대한 참상을 국제적 연대로 극복하여 이루어낸 평화와 국제민주 여성연맹(WIDF)이라는 단체에서 전개한 여성주의 평화운동을 원래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던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김태우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는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시고, 미래의 한반도 거주민들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사학의 내용과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면서 쓰신 『평화인문학이란 무엇인가』, 『폭격 : 미국 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등의 여러 저서가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펠턴은 오로지 영국에 대한 애국주의적 활동에만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영국의 개혁적 주택정책 중 하나인 스티버니지 뉴타운 건설을 위한 스티버니지 개발공사 총재임과 동시에 영국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그렇기에 펠턴은 한국전쟁 조사 활동 이전에 여성운동이나 평화운동과 관련된 경험이 없었습니다. 펠턴은 이러한 직무를 뒤로하고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전쟁의 참황을 조사하기 위해 여러 국가에서 초청받은 국가, 직업, 계급, 정치, 사상 등에서 매우 다양하고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는 여성 엘리트들과 북한행을 결정하였습니다. 그 중 펠턴이 왜 한국행을 결정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당시 영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이해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노동당이 1945년에 영국 역사 최초로 단독 집권당이 되었으며 범국민적인 지지 아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를 내걸고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에 옮기며 대규모 산업들이 국유화되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스티버니지 뉴타운 개발사업 실행하지만,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엄청난 국방비 증액으로 인해 실행 과정에서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에 펠턴은 스티버니지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영국인들의 ‘희망의 일부분’이었고, 이제는 스티버니지의 운명이 ‘세계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에 차있었습니다. 저도 펠턴과 같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라는 학문을 공부하며 역사가 새로운 미래를 향한 우리들의 ‘기록의 일부분’이었고, 앞으로는 우리의 기록의 운명이 ‘우리의 자긍심’과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후 펠턴은 국제여맹 영국 지부로부터 한국전쟁 조사단 참여 여부를 의뢰하는 초청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펠턴과 국제 여맹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앞으로 일어날 전반적인 내용을 예상할 때 초청에 응하는 것이 노동운동에 밑거름이 되고, 진실을 발견하고 진실을 발견할 경우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그녀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녀의 경력과 명예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는 선택인 북한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 전쟁터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 전쟁의 진실을 추적・전달하는 데 있어서 최적의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수년간 종군기자 생활을 했던 소련인 옵샨니꼬바와 영국인 펠턴의 서로 주고받는 논쟁이 제게 강렬하게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논쟁을 하며 전쟁을 조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조사를 한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진실을 세계에 알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전쟁을 중・고등학교 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진실들만 배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남침과 전쟁의 양상과 결과에만 주목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으며, 여성에게 성폭력을 한 사실도 알게 되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충격이 제가 한국전쟁을 역사적으로의 접근뿐만 아니라 인류학적, 심리학적으로도 접근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보안상의 이유로 중국 인민복을 착용한 조사단은 압록강을 거쳐 신의주 지역에 도착하였다. 조사단이 본 신의주의 모습은 참담하였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2차 세계 대전 당시 쓰였던 소이탄 공격을 통한 신의주의 완전 파괴 현장을 보았으며 이러한 신의주의 파괴는 당대 쓰인 미국 공군의 문서로에서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맥아더는 1950년대 10월까지만 해도 소이탄을 이용한 신의주 완전 파괴 작전에 반대하는 견해이었지만 맥아더와는 달리 유엔은 신의주 공중 폭격 정책을 과감히 수정하여 기존과는 완연히 다른 노선을 전면적으로 채택했다. 여기서 다른 노선은 한반도 상공에 과거의 역사 속에 박제해버리고자 했던 2차 세계 대전의 악령, 소이탄을 불러드리는 것이었다. 11월 8일 신의주 폭격의 실행은 한국전쟁기의 유엔군 작전사는 물론, 인류 평화사와 냉전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 하나로 손꼽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신의주 폭격이 꼭 이루어졌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점이 들었습니다. 폭격보단 더 좋은 방안이 있었을 것인데, 이루어졌다는 점과 폭격의 과정에서 희생되었을 민간인분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전쟁 직후 신의주의 복원이 힘들 것이라는 추측을 하였습니다. 또한, 미 공군의 이러한 비인도적인 성격을 지닌 폭격을 더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사위원들과 신의주 시민들의 인터뷰에서 전폭기들의 기총소사(=항공기에서 땅 위의 표적을 비로 쓸어 내듯이 기관총으로 쏘는 일)을 했으며 그로 인해 부상자들과 사망자들도 속출했다고 말하였으며 또한 미 공군이 소이탄 폭격 직후 신의주 도시 전역에 시한폭탄을 투하했으며 이러한 시한 폭탄들은 다양한 시간대에 폭발했기에 신의주 시민들뿐만 아니라 조사단의 생명도 위험했습니다. 이렇듯 수많은 북한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유쾌하게 웃으면서 지내다가도, 언제든 마음속의 가장 어두운 심연으로 급속히 추락하곤 했습니다. 전쟁 후 정신적 외상 증후군이라는 어두운 심연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러한 심연을 가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현상이며 이렇게 묵묵히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는 조사위원들에 대한 고마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즉 전쟁 직후에 대한 희망의 감정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후 조사단은 4개 조로 흩어지기로 하였다. 흩어지기로 한 이유는 제한된 기간 내에 최대한 방대하고 다양한 지역에 대한 현지 조사를 시행하기 위한 결심이었으며, 조사단 중 펠턴과 옵샨니꼬바외 4인은 유엔군이 자행한 황해도 대학살이 일어난 안악과 신천지역을 조사하러 떠났다. 안악의 여러 산의 능선에는 안락 지역민 집단학살이 자행되었으며 유엔군은 점령 기간 이 곳으로 수많은 사람을 끌고 와 학살하고 집단 매장하였다. 마치 세계 대전 기간 동안 나치의 만행과 비견될 정도로 많았으며 이후 조사단은 시내로 내려와 안악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였으며 그 결과 조사단은 증언 채록과정의 반복을 통하여 보기 드물게 역사의 잔인한 한 국면을 천천히 그릴 수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동안 이러한 집단학살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그 주체가 한국을 도와주었던 미군이라는 것에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책의 서평을 마무리 지으면서 저는 남북한 정상의 회담인 판문점 선언에서 제시한 ‘종전 선언’은 현재까지 어떠한 작은 열매조차 맺지 못하였기에 한시라도 빨리 종전 선언을 하였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품고 살아갈 것이며,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만약 어느 조사위원이 북한 여성들을 향해 “70년이 지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면 그 당시의 북한 여성들은 믿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북한 여성들뿐만 아니라 북한 남성들, 남한 남성과 여성들은 사실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불안과 긴장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덴마크 조사단원인 카테 플레론의 ‘침략자는 처벌받아야 한다.’라는 완벽한 정의뿐만 아니라, 그 전재의 지속과 형식에 대해서도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는 말처럼 저는 우리가 더욱더 ‘전쟁의 지속’과 ‘전쟁의 형식’에 대해 강한 의문점을 제기했던 국제 여맹 조사위원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도대체 전쟁이 왜 아직도 끝나고 있지 않은지, 전쟁 과정은 왜 그토록 잔인했는지, 그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더 진지하게 집요하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덧붙여 저는 아직까지도 국제 여맹 조사위원단의 이러한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종전될 때까지 유효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