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 없는 7살 여자아이를 품어주는 습지는 \’몬스터 하우스\’같다. 영화 속 집이 살아숨쉬던 것처럼, 가끔 자연은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힘들 때 밤바다를 찾아가 어둡고 깊은 울렁임을 보면 곧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떡 벌어진 입에 오갈데 없는 감정을 쏟아내면, 악어새처럼 그 앞을 빠져나간다. 어린 날의 내가 밤바다를 찾아간 것처럼, 카야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글을 읽는 내내 참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비혼주의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해본 사람이라면, 옆에 애인이 있든 없든 외로움은 매한가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올 때 종종 되뇌이곤 하는데, 결국에 자신은 이 외로움을 홀로 견뎌내야함을 깨달은 카야를 보면서 그 순간이 겹쳐보였다. 이 책에서 외로움은 당연한 인간의 본성같은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어떤 남자도, 가족도, 카야 본인도 해결해줄 수 없었던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해소할 수 있었을까. 어릴적 카야와 달리 성인이 된 카야는 욕구를 해결할 남자, 정신적으로 잘 통하는 남자, 오빠와 가족같은 점핑과 메이블, 자신을 지지해주는 변호사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외로움은 그를 떠나질 않는다. 왜 카야는 그토록 외로웠을까, 카야가 줄곧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카야는 소속감과 연대를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카야의 엄마는 카야에게 여자친구간의 우정을 알려주지만 카야는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따라해볼 뿐이다. 저 밖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밖에 없고, 사회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도록 조롱하고, 위협한다. 주변인들은 조력자일지언정, 동료가 되진 못한다. 카야에게 삶은 세상로부터 지켜내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일생을 고립되었다.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건 시혜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삶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사회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야 한다.
인상깊었던 장면
어떤 걸봐도 그 안에서 내 결핍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내려고 하는 걸 알아차릴 때가 있다. 유독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는 이유고, 나의 결핍을 어쩌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다. 이렇듯 같은 모습을 발견할때마다 카야의 삶을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을 위해 웃어주는 것을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한 것으로 표현한게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나는 쉽게 남의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남을 생각해 웃어주는 마음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크게 와닿았다. 카야가 얼만큼 간절했을지 잘 알려주는 표현이었다.
크게 생각해볼 거리도 없는 맞는말, 이런 구절을 보면 그냥 재밌다.
읽으면서 울지는 않았는데 만약 울었다면 틀림없이 여기서 울었을 것이다.
절대로 심장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정신이 생각해낼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
심장은 느끼고 또 명령하지
아니면 내가 선택한 길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시련을 헤쳐나갈 기나긴 길을
당신이 선택했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시는 아직 어렵다. 읽었을때 농축된 의미를 파악하기가 버거운데, 처음 작중에 나오는 시를 읽으며 시에서 감정을 느꼈다. 시를 속삭이는 모습이 영화처럼 그려지는 부분이었다. 다 읽고 다시 읽어보면 정말 잘 짜여진 복선이란 걸 알 수 있다. 꼭 재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부분이다.
카야가 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독서모임 목차를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만약 내가 카야 주변의 어른이었다면, 카야를 학교에 보냈을까?라는 논제를 읽게 됐다. 생각해볼 지점이 많은 부분인 것 같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카야가 계속 학교를 다니면 어땠을까? 그런 지독한 외로움을 그곳에서도 똑같이 겪을 테지만, 그런 습지에서도 점핑과 메이블을 만났듯이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습지에서의 카야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테지만 어쩌면 멀리서만 지켜보던 여자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있었을지도,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났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카야를 만난 어른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면, 학교에 가는 것을 권유해볼 것 같다.
결말에 대한 생각
결말에 갑자기 휘몰아치는 전개를 보며 마치 시즌2를 꼭 내놓을 듯이 끝마치는 드라마를 본 기분이었다. 카야가 진짜 범인이었다는 것도 허투루 알려주지 않는.. 진짜 멋진 작품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계속 카야의 삶에만 몰입을 해서 테이트도, 체이스도 로맨스보다는 버틸 곳 없는 곳에서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유일한 버팀목들이 모두 카야를 배신했을 때 예상한 결과임에도 정말 마음이 슬펐다. 특히 체이스에게 맞고서 엄마를 이해하는 장면이 그랬다. 도저히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와 겨우 쌓은 추억마저 헛된 것이란걸 마주했어야 할 카야가 안쓰러웠고,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구석으로 몰이당하는 피식자가 된 기분이 떠올라 힘들었다. 카야가 그렇게 계획적인 살인을 실행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끝까지 내몰려본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당연한 살인이었다. (이걸 곤충의 생태에 비유한 것도 정말 좋았다. 떡밥회수가 정말 훌룡한 작품이다.) 그리고 카야가 시인이었다는 게 마지막에 밝혀진 걸보고 한번 더 재독을 마음먹었다. 읽을때마다 다른게 보일 것 같은 작품이다. 괜히 궁금해서 다른 서평에서 아쉬운 점을 좀 읽어봤는데 마지막 장면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나뉘는 것 같았다. 나는 불호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호에 치우쳤다. 나의 기준으로썬 완벽한 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