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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자/역자
델리아 오언스
출판사명
살림
출판년도
2019-06-21
독서시작일
2021년 10월 27일
독서종료일
2021년 11월 04일
서평작성자
김*희

서평내용

기댈 곳 없는 7살 여자아이를 품어주는 습지는 \’몬스터 하우스\’같다. 영화 속 집이 살아숨쉬던 것처럼, 가끔 자연은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힘들 때 밤바다를 찾아가 어둡고 깊은 울렁임을 보면 곧 잡아먹힐 것만 같았다. 떡 벌어진 입에 오갈데 없는 감정을 쏟아내면, 악어새처럼 그 앞을 빠져나간다. 어린 날의 내가 밤바다를 찾아간 것처럼, 카야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으로 달려간다.

글을 읽는 내내 참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비혼주의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해본 사람이라면, 옆에 애인이 있든 없든 외로움은 매한가지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올 때 종종 되뇌이곤 하는데, 결국에 자신은 이 외로움을 홀로 견뎌내야함을 깨달은 카야를 보면서 그 순간이 겹쳐보였다. 이 책에서 외로움은 당연한 인간의 본성같은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다. 어떤 남자도, 가족도, 카야 본인도 해결해줄 수 없었던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해소할 수 있었을까. 어릴적 카야와 달리 성인이 된 카야는 욕구를 해결할 남자, 정신적으로 잘 통하는 남자, 오빠와 가족같은 점핑과 메이블, 자신을 지지해주는 변호사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외로움은 그를 떠나질 않는다. 왜 카야는 그토록 외로웠을까, 카야가 줄곧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카야는 소속감과 연대를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카야의 엄마는 카야에게 여자친구간의 우정을 알려주지만 카야는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따라해볼 뿐이다. 저 밖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밖에 없고, 사회는 자신이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도록 조롱하고, 위협한다. 주변인들은 조력자일지언정, 동료가 되진 못한다. 카야에게 삶은 세상로부터 지켜내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일생을 고립되었다.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건 시혜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삶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사회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야 한다.

인상깊었던 장면

  • 카야는 생물학의 세계를 샅샅이 뒤지며 어미가 새끼를 떠나는 이유에 답이 될 만한 설명을 찾아 헤맸다.

어떤 걸봐도 그 안에서 내 결핍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내려고 하는 걸 알아차릴 때가 있다. 유독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는 이유고, 나의 결핍을 어쩌면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다. 이렇듯 같은 모습을 발견할때마다 카야의 삶을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카야는 체이스를 생각해서 웃어주었다. 살면서 해본 적 없는 일인데도 곁에 누군가를 두기 위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했다.

상대방을 위해 웃어주는 것을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한 것으로 표현한게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나는 쉽게 남의 의견에 공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남을 생각해 웃어주는 마음이 자신의 한 조각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크게 와닿았다. 카야가 얼만큼 간절했을지 잘 알려주는 표현이었다.

  • 카야는 아주 오래전 엄마가 언니들에게 녹슨 픽업트럭을 과하게 튜닝해 몰고 다니거나 고물 자동차의 라디오를 귀청이 떨어지게 틀고 다니는 젊은 남자들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가치한 남자들이 시끄러운 법이거든.\” 엄마는 말했다.

크게 생각해볼 거리도 없는 맞는말, 이런 구절을 보면 그냥 재밌다.

  • 카야는 체이스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거절로 점철된 삶이 슬펐다. 머리 위에서 씨름하는 하늘과 구름에 대고 카야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읽으면서 울지는 않았는데 만약 울었다면 틀림없이 여기서 울었을 것이다.

절대로 심장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정신이 생각해낼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

심장은 느끼고 또 명령하지

아니면 내가 선택한 길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 시련을 헤쳐나갈 기나긴 길을

당신이 선택했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시는 아직 어렵다. 읽었을때 농축된 의미를 파악하기가 버거운데, 처음 작중에 나오는 시를 읽으며 시에서 감정을 느꼈다. 시를 속삭이는 모습이 영화처럼 그려지는 부분이었다. 다 읽고 다시 읽어보면 정말 잘 짜여진 복선이란 걸 알 수 있다. 꼭 재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는 부분이다.

카야가 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독서모임 목차를 고민하다가 인터넷에서 만약 내가 카야 주변의 어른이었다면, 카야를 학교에 보냈을까?라는 논제를 읽게 됐다. 생각해볼 지점이 많은 부분인 것 같아 굉장히 흥미로웠는데, 카야가 계속 학교를 다니면 어땠을까? 그런 지독한 외로움을 그곳에서도 똑같이 겪을 테지만, 그런 습지에서도 점핑과 메이블을 만났듯이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습지에서의 카야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테지만 어쩌면 멀리서만 지켜보던 여자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있었을지도,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났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카야를 만난 어른이라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면, 학교에 가는 것을 권유해볼 것 같다.

결말에 대한 생각

결말에 갑자기 휘몰아치는 전개를 보며 마치 시즌2를 꼭 내놓을 듯이 끝마치는 드라마를 본 기분이었다. 카야가 진짜 범인이었다는 것도 허투루 알려주지 않는.. 진짜 멋진 작품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계속 카야의 삶에만 몰입을 해서 테이트도, 체이스도 로맨스보다는 버틸 곳 없는 곳에서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선택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유일한 버팀목들이 모두 카야를 배신했을 때 예상한 결과임에도 정말 마음이 슬펐다. 특히 체이스에게 맞고서 엄마를 이해하는 장면이 그랬다. 도저히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버지와 겨우 쌓은 추억마저 헛된 것이란걸 마주했어야 할 카야가 안쓰러웠고,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구석으로 몰이당하는 피식자가 된 기분이 떠올라 힘들었다. 카야가 그렇게 계획적인 살인을 실행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끝까지 내몰려본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당연한 살인이었다. (이걸 곤충의 생태에 비유한 것도 정말 좋았다. 떡밥회수가 정말 훌룡한 작품이다.) 그리고 카야가 시인이었다는 게 마지막에 밝혀진 걸보고 한번 더 재독을 마음먹었다. 읽을때마다 다른게 보일 것 같은 작품이다. 괜히 궁금해서 다른 서평에서 아쉬운 점을 좀 읽어봤는데 마지막 장면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나뉘는 것 같았다. 나는 불호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호에 치우쳤다. 나의 기준으로썬 완벽한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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