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헤겔의 음악미학>을 읽으며 음악은 물질적인, 공간적인 예술이 아닌 비물질적인, 시간적 예술이기에 다른 예술과 차별화된 어떤 특징을 가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것을 뒤집는 전복의 역사에 대한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음악 그 자체는 비물질적이겠지만 이러한 음악은 사실 물질이 동반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가 없다. 음악은 전적으로 물질에 의존하고 있다. 악보, 악기, 공간, 작곡가, 연주가, 음반, 재생기기 등이 이러한 것들이다.
아무튼 비물질적인 음악은 물질을 통해 재현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재현 또한 고정된 그 형태가 없다.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하더라고 지휘자에 따라, 연주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되어서 음악을 표현하는 강약, 그 속에 담긴 감정이 서로 다르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기에 탄생한 무수한 존재론적인 의문들은 사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과 철학에서도 발생했다.
가까운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부터 시작해서 다다이즘, 그리고 수많은 추상표현작가들이 생겨난 것처럼 특정 요소에 갇혀있던 매체들은 자신의 특성 그 자체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음악에서는 표현의 첫단계인 악보에서부터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 악보는 기존 역할인 단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시각적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발전하며 \’그래픽 기보\’를 통해 악상 기호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과정 사이에 존 케이지의 「아리아」, 코닐리어스 카듀의 「논고」가 있었고 그 최종 결착지가 디터 슈네벨 「모-노, 읽기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언급한 디터 슈네벨의 「모-노, 읽기 위한 음악」은 사실 <모-노, 읽기 위한 음악>라고 인용해도 될 만큼 음악과 도서 그 사이 매우 애매한 경계에 존재한다. 이 한 권의 책이자 악보집에는 많은 글, 그림, 사진, 악보가 존재하며 여기서 음악은 소리를 견인하지 않은 그저 음악의 \’매체\’일 뿐이다.
이러한 악보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자동 연주 악기\’이다. 레코딩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장 연주 음악이 레코딩 재생 음악으로 넘어가던 그 찰나에 노이즈가 잔뜩 섞인 당시의 레코딩 재생 음악을 대체한 것이 바로 \’자동 연주 악기\’이다. 앞선 글에서 읽을 수 있듯이 이러한 \’자동 연주 악기\’도 단순 정보 전달과 음악 재생만을 위해서 탄생했지만 그 끝은 본인만의 특징을 살리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피아노에 더 가까워서 직접 페달과 볼륨을 조절하면서 안에 있는 롤을 돌려야 했기에 청취자와 연주자의 경계가 희미했지만 이것이 완전 자동화가 되면서 그 끝은 연주자의 자의적인 곡 해석을 싫어하거나 인간의 열 손가락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를 원하는 작곡가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파울 힌데미트의 「기계적 피아노를 위한 토카타」, 에른스트 토흐의 「벨테미뇽 전자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소품」같은 곡들이 탄생했고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수치적으로 정교해질 수 있는지 실험한 콜론 낸캐로우의 「자동 피아노를 위한 연습곡」연작의 탄생까지 이어졌다.
마지막은 \’음악 재생\’과 \’재생기\’에 대한 논의다. \”실황과 음반이 원본과 사본의 관계 속에 있다면 과연 원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맞닥뜨렸을 때 일단은 큰 고민 없이 당연히 \”실황\”이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평상시 완벽하게 노래를 끝낸 가수에게 \”음반을 씹어 먹었다.\”, \”앨범과 똑같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이럴 땐 또 우리는 음반을 원본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재생 기기가 발전하면서 음반에 노이즈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는 HI-FI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LO-FI를 찾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녹음된 노이즈와 잡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끝에 음반의 소리가 음악의 소리를 뒤덮는다면, 녹음된 음악이 들리지 않고 매체의 소리만이 들린다면, 이 경우 음반과 음악의 관계는 어떻게 재조정되어야 할까? 이러한 노이즈를 극대화낸 \”메르츠보우\”의 음악을 우리는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클래식과 관련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겐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직전에 읽은 책이 <헤겔의 음악미학>이었기에 고전적 음악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남아있어서 크게 어려웠던 것 같지는 않다. 오랜만에 음악과 관련된 참 재밌는 책을 찾아 매우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