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것을 난쏘공(이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보여 준다. 실제로 재개발 지역민들의 아픔과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우리는 실제적으로 아는가? 자본주의 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이들에게는 모두가 가해자인 것이다. 자본주의 아래
세상은 자본을 가진 자, 자본을 가지지 못한 자로 나뉘며, 자본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어쩔 수 없는 가난의 운명을 되물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난쏘공을 읽으며, 우리가 어떻게 가해자가 되었는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2.”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 영희도 우리와 같은 또래이지만, 팬지꽃으로 상징되는 그녀의 꿈과 희망은
무참히 폐수 속으로 던져진다. 그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직감하였기에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리라.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그녀의
삶에 안쓰러웠다. 3. ‘ 그럼 소리를 내지 말고 울어.” – 세상은 88만원 세대, 우리들에게 가혹하기만 하다. 그 앞에서
우리는 늘 좌절한다, 그리고 울기도 한다. 그러나 우는 것은 우리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든다. 영호가 영희에게 소리를 내지 말고 울란 것은
강해져라는 것이다. 즉, 울면서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라는 것이다. 나 역시 힘들수록 더 강하게 견뎌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
”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 대학을 다니는 우리는 대학을 다니지도
못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본을 가진 자가 자본을 가지지 못한 자를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삶조차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기는 자가 있다면, 분명 지는 자가 있다. 우리는 지는 자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영희의 몸에서는 풀냄새가 나지만, 개천 건너 주택가 골목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상황이 우리의 삶을 극단적으로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가 고기를 먹고, 비만에 시달릴 때,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극빈한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우리는 왜 이토록 대조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가에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의심해보아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