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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서서
저자/역자
양귀자
출판사명
살림 1998
출판년도
1998
독서시작일
2020년 12월 18일
독서종료일
2020년 12월 18일
서평작성자
이*경

서평내용

책에서는 ‘모순’이라는 책의 제목과 걸맞게 주인공들이 대비되어 등장한다.
주인공의 어머니와 쌍둥이 동생, 남자친구들이었던 김장우와 나영규의 성질은 확연히 대비되는 것이었다.
이 대비 사이에서 주인공은 한 쪽에 치우치기도 하고 다른 한 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주인공의 나이는 스물 다섯 살로 나와 거의 비슷하다.
고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스물 다섯은 아주 큰 어른 같이 보였는데 이제 와서 보니 고등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신연령을 가진 사람에 불과했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공이 던지는 대사들이 마음을 깊숙히 찌르는 것들이 많았다.
어느 주말 잠에서 깨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어!’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나
‘그런데 나는? 스물 다섯 해를 살아오면서 삶에 대해 방관하고 냉소하기를 일삼던 나는 무엇인가. 스물 다섯해를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무엇에 빠져 행복을 느껴본 경험이 없는 나, 삶이란 것을 놓고 진지하게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본 적도 없이 무작정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있는 나, 궁핍한 생활의 아주 작은 개선만을 위해 거리에서 분주히 푼 돈을 버는 것으로 빛나는 젊음을 다 보내고 있는 나’라는 문장이 마음을 찌르고 다가왔다. 
내가 저 문장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저 문장의 행태와 어딘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기에 불편했다. 

 주인공의 집은 한마디로 콩가루에 사고를 안치는 인간은 어머니와 주인공 둘 뿐인 그런 가정이다. 반대로 어머니와 쌍둥이인 이모네 집은 모두가 제 역할을 잘하는 이상적인 가정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이모를 낭만적이고 어머니와 달리 곱게 생활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반면에 어머니는 억척스럽고 가족 중 누군가가 사고를 치면 수습하는데 이골이 난, 하지만 묘하게도 사고를 수습할 때면 활기를 띄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결말에 가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완벽해보이는 이모가 자살을 하는 점이다. 이모는 주인공과 함께 눈오는 날 스파게티를 먹은 후 며칠이 지나 주인공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시신을 수습해달라는 유서를 보낸다. 이모로써 조카에게 부탁하기엔 가혹한 말을 남기고 떠난다. 소설을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읽어온 독자에게는 이 사건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순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지금껏 주인공과 주인공의 어머니, 가정과 대비되어온 이모는 완벽하고 이상적이어보였기 때문이다. 이모는 편지에서 ‘무덤 속 평온’같은 이 삶을 더이상은 못견디겠다고 말한다. ‘평온’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 아닌가? 그 평온이 무덤 속 평온이었기 때문에 못견디었던 것인지 독자로써는 의문이 남는다. 인간은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인간의 본능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상처 하나 없이 잘 사는 사람을 보면 질투심이 든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소설 속 이모의 죽음이 이상적이지 않은 형태로 덜그덕거리며 어떻게든 굴러가는 모양새로 사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위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너만 힘든게 아니야’, ‘보이지 않은 곳에서 모두가 힘들어하고 있어.’ 그런 느낌으로. 그래도 누군가의 죽음은 슬프다. ‘조금만 더 견뎌주지. 힘든 것 버티고 잘 살고 있는 모습 보여주지.’하는 마음이 든다. 그럴 때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상한 위안을 얻은 마음이 죄스러워진다. 대비와 모순 투성이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죽음을 통해 들게 하는 감정도 모순되게끔 만들었다. 

 안진진의 시선으로 본 독자는 몰랐겠지만 이모의 삶은 억척스러운 어머니의 삶보다 더 고통스러웠나보다. 사고를 수습할 때면 묘하게 활기를 띄는 어머니와 반대로 이모의 무덤 속 평온 같은 삶은 더욱 숨막히는 것이었다. 세상엔 알 수 없는 흑백으로 정의하기 힘든 수많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을 선을 그어 선 안과 밖으로 구분하려 하는 건 힘들고 부질 없는 짓이다. 요즘 나는 단순하게 살려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때론 고통을 정면으로 탐구하지 않고 다른 편안한 것들로 눈을 돌리는 것인데 때로는 그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게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도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린 것일거다. 많은 것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려하지 않고 대부분의 것을 애매한 경계선에 두고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똑똑해보이지 않는 방법일지라도 그게 멀리 봤을 때 맞는 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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