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종교는 잘 몰라도 우리 삶에 가장 깊게 스며든 종교 중 하나인 기독교는 절대자가 내 고난과 역경을 해결해주리라 믿는다. 구원 받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믿는 것이 바로 “예수“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못지않게 신도를 가지고 있는 불교는 어떨까?
생각보다 사람들은 부처를 예수와 같이 대한다. 적어도 내가 읽은 책에 의하면 부처는 신이 아니다. 단지, 고난과 인고로 뭉친 성인일 뿐이지. 불교는 부처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나 자신을 믿는 거지. 부처와 부처의 말씀은 나 자신을 더 쉽게 믿을 수 있는 방법과 방향을 제시해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처를 지나치게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매체에서 부처의 말씀이 아닌 부처 그 자체를 신과 동일시한다. 우리는 “신격화“라는 베일을 어느 정도 벗기고 부처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 가장 알맞은 책이 바로 <사캬무니 붓다>라고 생각한다.
부처의 탄생과 생애, 출가와 성도, 전도와 교화 그리고 죽음까지 모두 담은 인간 부처의 전기와 같은 책이다. 부처의 생애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이때까진 악기도 연주하고 책도 읽고 가끔은 게임도 하면서 나름 거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코로나를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들어서 모든 것이 허망해지고 의미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인생 자체에 현타가 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랬었다.
추구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더 넓은 인간관계, 더 많은 지식, 더 좋은 성적, 더 나은 게임실력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왜 이것들에 집착했을까? 앞에서 말한 모든 것들은 그 끝이 없다. 10이 끝인 줄 알았겠지만 내가 10을 달성하면 15를 바라보고 20을 목표로 삼을 것이 뻔하다. 그럼 나는 계속 현타를 느꼈겠지…
부처와 부처의 말씀 그리고 이 책이 이런 나에게 스승이 되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항상 내가 갈 길을 주변인에게 묻고 밖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우리에게 정답을 우리 안에서 찾으라고 해준 인물이 바로 사캬무니 붓다이다. 인도의 어느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난 그는 스스로 그 자리를 걷어차며 고행길로 나선다. 그와 비슷한 많은 이들이 걸어간 거의 모든 길을 가보았으나 결국 그 길이 아님을 깨닫고 그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낸다.
그래서 부처는 “나를 따라오라“, “나를 믿어라“와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올바른 길을 가야만 올바른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저마다 가야 할 올바른 길은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의 행동 대부분에는 “위대한” 이라는 서술어가 붙는다. 위대한 탄생, 위대한 포기, 위대한 깨달음, 위대한 죽음 등 말이다. 그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지만 누구나 자신을 따르게 한 지도자이자 스승이다.
“Vayadhamm? sa?kh?ra appam?dena samp?detha.” (모든 형성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할 일을 완수하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 집착하여 가야할 길,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 한다. 우리는 부처가 아니기에 항상 비우면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기회가 되면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을 비워내 보는 것은 어떨까?
혹시 모르지 않을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열 번이 되고 열 번이 수백, 수천 번이 되면 우리도 성인에 가까워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