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쓰기

>>
서평쓰기
>
미학 : 함몰된 감각의 복구수단
저자/역자
출판사명
출판년도
독서시작일
2020년 07월 24일
독서종료일
2020년 07월 24일
서평작성자
이*민

서평내용

1권이 시대별 예술 사조의 흐름을 설명하여 교과서적인 미술사책 같은 느낌이 강했다면, 2권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관점을 통해 예술의 본질을 논하는 철학책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3권은 전편들에 비해 어려웠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론 가장 재미있었고 잘 읽혔다.

3권은 아마 대부분이 처음 들어봤음직한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판화가 피라네시의 작품을 통해서 20세기 이후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미디어 아트에 대해 다룬다.

탈근대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와 자연과학의 발달 그리고 헤겔이 자연미의 결함을 운운하면서 인간은 세상을 본인들의 의지대로 양적, 질적 측정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서 일어난다.

아담의 언어와 바벨의 언어에 대해 아는가? <창세기>를 보면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바로 그 생물의 이름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대목은 아담이 모든 사물의 명명자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가 명명한 모든 사물들은 신과의 직접적 연결성이 존재함을 나타낸다. 이러한 아담의 언어는 한 단어가 한 사물의 근원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통한 혼란은 부재했다.

그러던 와중,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신에 의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그들의 후손들은 그러한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다가 신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언어의 자의성이다.

사물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아담의 언어와 자의성을 드러내는 바벨의 언어의 이러한 특징들은 예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사라진 아담의 언어를 현대 예술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 예술은 우리의 세계 그 자체를 미메시스한다. 그 덕에, 구체적인 대상을 모방하지 않아도 우리는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예술은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한다.”라는 스위스 화가 파울 클레의 말을 되새겨보자.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작품해설은 하나가 아니다.” 이것이 탈근대적 사고를 대표하는 문장이라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해석 획일화의 파괴는 자연스럽게 재현의 파괴까지 연장된다. 이를 통해 예술 속에서 여러 놀이가 탄생된다. 필연의 놀이, 우연의 놀이 그리고 필연과 우연의 놀이. 필연의 놀이는 기하학적인 몬드리안의 작품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우연의 놀이는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을 통한 작품들을 보면 된다. 전자가 코스모스를 대표하고 후자가 카오스를 대표한다면 이들의 중간을 이 책에선 카오스모스라고 설명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보면 우연과 필연의 혼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원작에는 고유한 아우라가 있고 복제품에는 이것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러한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나아가 원본인 동시에 복제품인 예술인 영화, 사진 등에 그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뉴미디어는 대중의 지각을 훈련시켜주고 비판의식을 일깨우며 예술의 수용과 연출의 주체로 대중의 지위를 상승시켜주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독일의 철학자 귄터 안더스는 이러한 뉴 미디어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가상인 동시에 실제인 뉴 미디어는 참과 거짓의 구별이 모호하게 하여 수용자를 팬텀에게 이끌고 편집과 같은 방법으로 언제든지 전체적인 의미를 조절가능하게 되면서 수용자를 마치 메트릭스 속 세상으로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이를 생산하는 모더니즘과 동일자를 무한히 생산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이들은 고전 예술에 비해 그들의 가치가 수용자에 의해 책정되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이러한 이들이 종언을 선고 받은 지는 좀 됐다. 왜 그럴까?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슬프게도 반대이다. 모두가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이면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이러한 현대 예술의 모습에 보드리야르는 예술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기에 죽는다.”라고 말했다.

3주 동안 읽은 미학 오디세이 시리즈가 드디어 끝났다. 읽으면서 미학은 예술에 관한 학문이라는 생각만 들었으나 이 책을 다 읽으니 결국 미학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학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크기와 형태는 우리의 감각에 의해서 결정된다. 감각들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너무 많은 것들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맛있는 음식만 먹으면 미각이 무뎌지듯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적 체험보단 질적 체험을 더 중요시해야한다.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예술이고 미학이 아닐까?

 

전체 메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