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칼비노의 책 3권을 읽고 그의 책을 더 찾아보다가 민음사 전집에 그의 책이 하나 더 있어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솔직히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채 펼쳐서 보게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큰 혼란을 가지게 되었다. 책에서 등장인물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두 명만 나오고 서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55개의 도시에 대한 묘사만 존재할 뿐
소설보다는 시집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 책. 소설을 배반한 책. 그 책은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마르코 폴로가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여행을 다니며 보았던 도시를 묘사하고 이에 대해서 대화한다. 칼비노의 도시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나 없다. 마르코 폴로는 칼비노의 언어로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도시를 여행하지만 이 추상적인 것들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묘사한다
칼비노의 ‘언어’도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가 제시한 기표와 기의 그리고 기호와 상징에 대해 최소한의 개념이 있어야 하겠다고 읽으면서 떠올랐다. 칼비노는 사물과 이름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 독자 마음대로 소설을 재구성하고 재편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
쿠빌라이 칸의 시점은 독자의 시점과 같다. 우리가 부산, 서울, 해운대, 광안리 등으로 어떤 지역을 부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역의 이름과 해당 지역은 아무런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울을 해운대라고 부를 수도 있고 광안리를 부산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자와 통치자인 쿠빌라이 칸은 기호와 기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는 스스로와 전혀 관련 없는 이름이라는 언어로, 심지어 숫자 13개로 우리를 정의하고 쿠빌라이 칸은 도시를 이름만으로 정의한다. 이 둘에겐 세상은 기호화, 기표화된다
그러면 마르코 폴로는 어떤 인물인가? 그는 자신이 돌아다닌 도시들을 주관적인 감상과 느낌으로 묘사한다. 기의와 상징의 측면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보는 이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주관적인 감상, 느낌, 해석을 통해 독자와 쿠빌라이 칸에게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환기시켜주고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자유도가 매우 높은 샌드박스 게임과도 같다. 세상을 기표와 기호로, 즉 한 가지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 듯이, 이 책도 한 가지 방법으로 처음부터 순서대로 보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페이지를 아무 곳이나 펴서 봐도 되고,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의 대화만을 보거나 그 대화들만 빼고 봐도 괜찮고 작가가 정한 순서를 독자 임의로 뒤죽박죽 섞어서 봐도 된다
원래 200여 쪽 정도 되는 얇은 책은 잘 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오랫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읽을 수 있고, 보는 내가 어떤 상황임에 따라 그 내용은 달라진다. 자유도가 높은 샌드박스 게임에 사람들이 왜 열광하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이 글을 적고 이 책을 사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