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본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그러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지하생활자의 수기>라고 하여 보게 되었다.
우선 최근에 읽은 <금각사>, <인간실격>과 어느 정도 유사한 소설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유쾌한 책이 아님은 먼저 말하고 간다. (사실 유쾌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난해하기도 하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많은 곳에서 2부를 먼저 읽던가, 2부만 읽으라고 할 정도로 1부의 내용을 이해하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앞서서 이 소설이 난해하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1부에서 기인된다.
1부를 읽기 시작하면 웬 남자가 혼자 얘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1부가 끝날 때까지 혼자 얘기한다. 그렇다 소설의 기본인 서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 혼자 본인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게 전부다. 그래서 글쓴이는 주인공을 상상하며 그와 대화 한다는 느낌으로 최대한 읽어보았다. 1부에서 주인공의 주장을 보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비판하며, 우리가 생각하기로 합리적 학문인 과학과 수학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나온다. 나는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한 철학자 데카르트와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그의 철학을 읽은 뒤 2부로 넘어가면 드디어 서사가 생긴다. 2부에서는 1부의 본인만의 철학과 상념이 빠진 주인공의 ‘찐따’스러운 면이 많이 나온다. 그렇게 1부에서 사색에 빠져 떠들던 이가 사실 키 작고 왜소한 추남이었으며 남들과 어울리고 싶지만 결국 따돌림 당하고 매춘부조차도 그에게 불쌍함을 느낄 정도의 ‘찐따’다. 책을 읽고 그의 행동을 하나씩 보면 왜 ‘찐따’ 라고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조금 난해하긴 했지만 책의 구조가 독특해서 신기했다. 1부에서 ‘지하’라는 공간에서 혼자만의 사색을 느끼는 ‘우월한’ 주인공은 2부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면 남들의 좋지 못한 시선을 받고 혼자서 패배감과 피해의식에 찌들어진 ‘열등한’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1부에서는 정말 지하에 있으나 2부에서도 ‘지하’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요약 및 느낀점>
도스토옙스키의 전환점에 위치한 소설인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이름조차 없는 주인공의 철학으로 구성된 1부와 그의 지상에서의 모습을 그려낸 2부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아래에서나 위에서나 ‘지하’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 비합리적인 것을 싫어하고 모든 행위에 의심하고 회의적인 그는 어떻게 보면 ‘데카르트’의 철학과 많은 면이 유사하다. 하지만 그가 타인과 교류를 하면 남이 싫어하는 행위만 골라하고 피해만 주는 비합리성 그자체인 ‘찐따’일 뿐이다. 본인의 이상과 실제 행동이 부조화될 때, 겪는 세상의 비웃음과 부조리는 우리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을 의심하고 합리성을 따지지만 정녕 본인에겐 그 줏대를 적용시키지 않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