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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나를 붙드는 삶
저자/역자
한강,
출판사명
문학과지성사 2013
출판년도
2013
독서시작일
2019년 05월 07일
독서종료일
2019년 05월 07일
서평작성자
정*진

서평내용

아픔에 관해서 서술한 글들은 많지만, 그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시집의 화자 또한 자신의 고통을 절절히 노래한다. 지독히 외롭고 상처 받은 영혼이 더 캄캄한 곳을 찾아 온몸을 구부리고, 얼마나 울었으면 아직 흘릴 수 있는 눈물이 남아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화가의 죽음과 자신의 탄생을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의 상처와 외로움을 그저 서술하는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을 옥죄는 그 어둠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 ‘파란 돌’ 中 – 

 화자는 꿈에서 죽어서 좋다고 말한다. 꿈에서는 솜털처럼 가벼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푸른 조약돌을 보고 주우려 할때 깨닫는다. 이 조약돌을 주우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화자는 처음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 시를 읽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화자가 떠올랐다.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 화자가 집으려고 한 조약돌은 그토록 원했던 무언가가 아닐까.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 살아있어야 자신이 원했던 무언가를 스스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마주한 삶에 눈물을 흘린다. 화자는 아픔을 느낀 순간 느꼈을것이다. 살고싶다. 그저 살고싶다. 다시 살아야한다. 그리고 십 년 동안 화자가 다시 삶의 끈을 놓지 않게 한 것은 바로 잡힐듯 말듯했던 그 파란 조약돌이었을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들의 파란 돌은 무엇일까. 죽지 않고 삶을 그토록 단단히 붙들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나를 살게하는것은 무엇인가. 혹은, 누구일까. 여기 또 하나의 시가 있다.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유채꽃 만발하던 뒤안길에는

빗발이 쓰러뜨린 풀잎, 풀잎들 몸

못 일으키고

얼얼한 것은 가슴만이 아니었다

발바닥만이 아니었다

밤새 앓아 정든 胃장도 아니었다

무엇이 나를 걷게 했는가, 무엇이

내 발에 신을 신기고

등을 떠밀고

맥없이 엎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는가 깨무는

혀끝을 감싸주었는가

비틀거리는 것은 햇빛이 아니었다,

아름다워라 山川, 빛나는

물살도 아니었다

무엇이 내 속에 앓고 있는가, 무엇이 끝끝내

떠나지 않는가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 대로 병들면

떠나려는가

발을 멈추면

휘청거려도 내 발 대지에 묶어줄

너, 홀씨 흔들리는 꽃들 있었다

거기 피어 있었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있음을 말하라

나는 귀를 막았지만

귀로 들리는 음성이 아니었다 귀로

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유월’ 中-

 전자의 시가 살아야 하는것을 깨닫는다면, 이 시는 우리에게 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처음엔 화자에게 번지는 희망이 화자는 달갑지 않았던모양이다. 마치 자신에게 달라 붙어서는 안될 것 처럼 희망이 병균처럼 번진다 말한다. 살고싶지 않았던 화자를 끝끝내 일으켜 세워 등을  떠밀고 삶으로 내몬것은 무엇이었을까. 병들대로 병들어 앓은속에 휘청거리는 화자에게 말하는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건 화자 내면의 음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살아라. 살아서 살아있음을 말하라. 그토록 힘없이 쓰러진 인생일지라도, 볼품없이 외로운 인생일지라도, 살아있는 삶이었다. 바람처럼 현실을 두고 떠나고 싶어하는 화자의 내면속엔, 아직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흔들릴지언정 도망가지 않는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귀를막을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던 것이다. 살아있음을 말하라고노래하는음성은 상처받은 나 자신에게 번지는 희망, 나 자신의 내면의 마음이 말하는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다시한번 열렬히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시집에 수록된 화자의 또 다른 시, ‘괜찮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젠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어쩌면, 화자는 그 수많은 삶의 끝에서 절망을 마주할때마다 내 인생은 왜 그래, 라며 탓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삶일지라도, 어떤 절망에 빠져있더라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화자는 이젠 알고 있다. 그렇기에 왜 그래, 가 아닌 괜찮아. 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게 아닌, 스스로의 회복을 통해 화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지독할 아픔일지라도, 살아가라고.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먼저라고. 담담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화자는 결코 자신을 동정하지도, 가슴 깊이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삶을 받아들일 뿐이다. 언젠가 고이 손에 쥐게 될 파란 돌을 위해. 또, 자신 내면에 피어나는 흔들리는 작은 꽃이 화자의 삶을, 살아감을 지탱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삶을 지탱하는 이 열렬한, 삶에 대한 의지는 무엇일까. 아마 이 책을 읽으며 모두가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지금 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살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휘청거려도, 앓는 속일지라도, 살아가고 있는 화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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