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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숨겨진 얼굴 :과학이 드러낸 궁극적 진실
저자/역자
Schroeder, Gerald L.
출판사명
하늘곳간 2006
출판년도
2006
독서시작일
2011년 01월 06일
독서종료일
2011년 01월 06일
서평작성자
**

서평내용

혹시 어릴 적
‘누군가가 인간이 먼저 태어났는지’ 혹은 ‘닭이 먼저인가? 아니면 달걀이 먼저인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이 문제는 과학의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허나 과학의 입장이 아닌 신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어떻게 될지를 적어놓았다. 현대과학의 발달은 사회를 복잡하게
변화시켰고, 우리의 마음 또한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신기술은 우리의 문화와 관습을 간단히 대치해 버렸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가치관들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게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편해졌고 더 많은 삶의 자유를 누리게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의 힘은 위대해져 갔다. 예전에는 물질의 이루는 원자로만 끝이 났었던 과학이 어느새,
핵을 발견되었고 원자의 크기가 10cm일 때, 전자구름은 6km 정도 퍼져 있다는 사실과 그 사이는 빈공간이 있고, ‘단단한 쇠붙이도
99.999999%는 텅 빈 공간이다‘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 까지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에도 쉬운 질문과 어려운
질문이 있다고 한다. 쉬운 질문은 뉴턴의 운동 법칙, 중력 법칙, 아인슈타인의 혁신적인 상대성 이론과 같이 모두 물리적 해답이 있다.
반면에 어려운 질문은 왜 중력이 존재하며 물질은 어떻게 그러한 힘을 생성하는가 물질의 기본 입자, 전자, 쿼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에너지란 무엇인가 등과 같이 자연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본질은 신의 가능성을 나타나게 한다. 이것 이외에는 인간이 화학적인
물질이 이루어져서 만들어져 있지만, 그러나 인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화학물품을 모아도 인간을 만들 수 없고 그 물질은 말 할 수도,
생각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그 화학물질로 이루어지고 움직이고 생각하면서 생활하는 것일까? 이것은 어느
과학서적에도 적혀있지 않다. 그러나 신이 언급된 서적이라면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성경 만약 과학이 발달하여 과학적으로 안다고
해도,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면서 태양이 점점 거 서쪽으로 멀어짐에 따라 파란하늘이 주홍색이 되고 이내 어두운 자줏빛이 되고 이내
어두운 자줏빛이 되어 마침내 검은 밤하늘로 물들이는 경이로움은 퇴색되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생각할 줄도 모르는 C,H,O등의
원자들로 구성된 집합체인 뇌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석양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과학은 오늘날
이러한 의문에 답하는데 있어서 한 세기 전보다 조금도 더 진보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의미는 과학이 건들일 수 없는 신의 영역일 지도
모른다. 종교를 떠나 과학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과학을 떠나 종교를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계시와 자연은 창조의 두 가지
측면이다. 신학과 과학은 각자의 고유한 관심을 가지고 하나의 실체를 두 가지 모습으로 보여준다. 신학과 과학 모두 실체의 본질을 알아내고자
하며, 이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를 찾아내길 원한다. 신학은 모든 실체에 초월적이고도 영적인 것이 들어 있다고 본다. 과학은 1900년대
초엽에 시작된 경이로운 발견들을 기점으로 하여, 우리 육신을 포함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물질이 실상은 에너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에너지의 밑바탕에는 전적으로 비물질적인 정보가 들어있다는 인식에 근접하게 되었다. 과학은 물질과 영적인 것과
결부시키지는 않지만 과학은 물질과 영적인 것 사이의 간격을 많이 좁혀 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다르지만 과학과 신학이 알아내려는 주목적은
같다. 바로 모든 만물을 알아내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은 만물을 물질로 보면서 연구해 나가는 것이고 신학은 ‘신’이라는 모든
만물의 시초를 만든 존재가 있을 것으로 보고 신을 알고자 한다. 과학의 모든 시초로 돌아 가보면 항상 신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주공간이라는
것을 과학으로 인하여 알게 되었다. 언젠가 과학이 발전한다면 우주의 끝을 보던가 아니면 우주 또한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우주조차 시초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빅뱅이라는 거대한 폭발로 인해 행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럼 이러한
빅뱅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우주속의 먼지들이 떠돌아다니다가 서로 뭉치고 그 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이 먼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우주는 누가 만든 공간일까? 그리고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 모든 것의 시초로 돌아가 보면 과학도
신학도 특별한 해결책이 없다. 하지만 그로인한 궁금증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은 과학과 신학의 목적이 같다는 것이다. 서구 사회의
피상적이고 물질적인 면으로 인해 종교에 소원해진 사람,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종교관에 젖어있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의문점(하나로
엮여있는 것)이 과학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개념이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미국에서 우주를 연구하는 나사같은 경우도 처음 들어가는
과학자들은 50~80%가 무교이지만 들어가서 연구하다가 보면 90%이상이 유교로 변한다고 한다. 이유는 연구할수록 과학의 한계를 느끼는
동시에 이런 신비로움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신의 영역이라고 인정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나사는 과학자로 연구해가다가 중간의
신학의 신자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문점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공통된 목표를 말이다. 현재 우리는
찾는 과정이 다르다고 과학과 신학을 학문과 종교로 나누는데 이게 과연 올바른 것 인건가. 만약 누군가가 묻는다면 모두들 웃으면서 아니라고
손 사례 칠 것이다. 물론 나도 같다고 아직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이 더욱 발전한다면 언젠가 과학이 신학의 한 부분으로 변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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