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말 중에 모순형용이라는 것이 있다. 양립될 수 없는 말을 서로 짜 맞투는 표현 방법이다. 이를테면 소리 없는 아우성, 괴로웠던 사나이 예수 그리스도 같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짜기만 해도 성장형 복지하는 말 역시 모순형용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성장과 복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많은 대립 속에는 그 또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복지'에서는.
스웨덴의 복지는 그 '모순'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다시 말해, 성장과 복지가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스웨덴의 복지모델은 혁신적인 모델로서 전 세계 국가들의 주목을 박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의 성장형 복지는 정작 그 이이면을 생각해보면 '냉정한 복지'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24년 동안 살아온 나로서는 '냉정한 복지'하는 말 역시 모순된 표현이라고 행각하지만, 실제로 스웨덴 복지는 우리나라의 복지와는 다르게 어느 정도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회 소외계층들에게 집중되는 우리나라의 복지와는 달리 스웨덴의 복지는 철저히 '일하는 사람'에 대한 복지이다. 이 '냉정한 복지'는 세금부터 시작한다. 세계에서 스웨덴만큼 높은 세율을 유지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물론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제공되고, 유급휴가 등에 대한 혜택도 많으니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세금부담이 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다른 방면으로 생각해보면 대학교육까지 무상이라는 것은 교육에 참여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낸 세금에 비해 적은 효용을 얻게 되는 것이니 교육에 참여해야하고, 마찬가지로 실업급여나 유급혜택 또한 자신들의 임극수준에 비례해 혜택을 받으니 자연스레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의욕도 없이 사는 사람들까지 무조건 국가가 부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복지'가 사회적인 안전망의 역할보다 오리혀 사람들을 한곡으로 몰아가는 수단으로서 사용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복지는 그 어떠한 이유에서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수간을 통해 사람들의 근로의욕을 높이고, 조세저항을 줄이며 경제성장과 복지를 함께 이룬 스웨덴의 모습은 일견 부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복지의 참모습일까. 복지는 행복한 삶을 뜻한다. 복지국가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를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스웨덴이 추구하는 보편적 복지는 국민 모두의 보편적인 복지, 즉 행복으로 연결이 될까. 물론 대답은 yes다. 현지점에서는 말이다.
분명히 그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다만, 그 행복은 스웨덴이라는 국가가 건재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일 때, 즉 스웨덴의 행복과 불가분의 행복이고,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불만을 갖기 시작하여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거나,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나라의 복지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대안 모델로서 스웨덴의 복지 체계를 주목하고 있다. 스웨덴의 구조와 제도를 도입하면 우리도 그들처럼 성장과 복지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적어도 현재로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다분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위 '냉정한 복지'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스웨덴의 복지처럼 일한 만큼 부담하고, 부담한 만큼 혜택을 받는 선순환의 구조가 우리나라에 도립된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현재 사회보장을 받고 있는 저소득층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별로 멀리서 찾지 않아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재취없을 위한 많은 구조망이 설치되어 있고, 저소득층의 경우 일을 하면 한 만큼 세금혜댁을 얻게 되어 기초생화을 보장하는 돈보다 많은 돈을 받게 되어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제도들이 그들의 근로의욕을 무조건적으로 고취시키지 않고 있다. 노숙자를 위한 시설에는 노숙자들이 술을 먹지 못한다는 이유로 들어가기를 기피하고, 재취업에 대한 의지조차 없다. 기초생활만 보장된다면 일을 안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이를 바로 잡기위해 스웨덴처럼 일하지 않으면 복지혜택을 점점 줄여나가는 냉정한 복지를 강화한다면, 아마도 '인권'을 주장하는 단체가 들고 일어나거나, 정치적인 이슈로 이용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면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은 어떨까. 그들 역시 일단 부담해야 하는 세금 자체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할 것이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질적 향상이나 불만을 끊임없이 제기할 것이다. 한편 소위 상류층이라고 볼 수 있는 재벌들은 현재도 그렇지만 복지를 위한 세제개편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에 남아있을 유인을 상실하여 해외로 떠날 것이다.
물론 지나친 비관과 비약일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까지 고려를 한 뒤에야 스웨덴의 복지 모델을 우리나라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국민성이나, 의식수준의 문제라기보다는 스웨덴의 복지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는 행복이다. 행복은 강요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행복은 냉정함속에서 자랄 수 없다. 다분히 이상적이고, 꿈같은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으나,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복지는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이 당연하고, 도움을 받은 이는 더욱 노력하는 것이 당영한 마음들이 만드는 것이지, 어떤 제도가, 국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스웨덴의 복지 모델을 본받기 이전에, 스웨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희생이 아닌 권리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본받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