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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생과 사의 부침 속 전언, <칼의 노래>
저자/역자
김훈,
출판사명
생각의나무 2007
출판년도
2007
독서시작일
2015년 07월 06일
독서종료일
2015년 07월 06일
서평작성자
**

서평내용

충무공 이순신의 업적과 그 위대함은 이미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배 위에서 적들이 범접하지 못하는 위엄을 뿜어내고, 허를 찌르는 전술을 구사하던 그는 가히 역사상 최고의 수군장이라 칭할 수 있다.

언제나 겁 없이 바다를 헤치고 왜적선을 부수던 이순신. 하지만 『칼의 노래』에서 그려진 그는 우리네 머릿속에 고착된 이미지와 달리 지독히도 외로웠다. 보이지 않는 적들을 생각하며 악몽에 시달리고, 전후방 가릴 것 없는 칼날 속에서 방황하던 그는 누군가의 품이 절실한 하나의 외딴 섬이었다.


저자 김훈은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보다 그의 인간상에 집중했다. 난중일기선조실록 등에서 발췌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순신의 업적을 소설로 구성했다. 역사 소설인 만큼 불가피하게 변형되거나 재편성된 사실이 있기 마련이다. 고로 저자는 연보와 등장인물 소개를 책 말미에 추가함으로써 해당 부분을 바로 잡았다. 연보 속 연도와 날짜는 물때가 수시로 바뀌는 바다의 일을 짐작하기 쉽도록 음력에 따랐다. 등장인물은 난중일기에 실명으로 기록된 이들의 생애와 이순신과의 관계를 기록했다.


명량해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순신의 수군 통제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유속이 급하고 밀물과 썰물의 난교가 이뤄지는 울돌목을 활용하면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열두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적선을 물리쳤던 그지만, 오히려 조정은 이순신을 괄시했다. 그가 역모를 꿈꾸고 있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오해의 배후에는 당시 경상 우수영 자리에 있던 ‘배설’의 탈영 사건에서 시작한다. 명량해전이 있기 두 달 전, 칠전량 전투에서 배설은 10척의 배와 수졸들을 데리고 전투장에서 도망친다. 이후 배설은 장수로서 싸움을 두려워한 창피함도 없이 뻔뻔함만 가득 안은 채 이순신에게 돌아온다. 그리고는 “용맹할 때는 용맹하고, 겁을 낼 때는 겁을 내는 것이 병가의 전략이라 알고 있소”라며 자신의 도망을 합리화한다.

이순신의 얼굴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을 본 배설은 그날 밤 탈영한다. 수군 지도자 중 하나가 탈영하자 조정은 조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조사 대상은 바로 이순신이었다. 명량해전에서 엄청난 힘을 보여준 이순신이라면, 배설을 감춘 채 역모를 일으킬 군사를 꾸리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이순신 주변을 뒤져도 배설이 없자, 임금은 이순신에게 ‘면사’첩을 내린다. 면사, 즉 죄를 사면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이지도 않겠다는 일종의 협박 섞인 경고였다. 소수의 배로 다수의 적을 해치워도 눈엣가시로 전락한 이순신은 이처럼 억울하고 구슬픈 사람이었다.


저자는 이순신과 명나라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풀어냈다. 당시 명나라는 자신들을 천군, 즉 하늘의 군대라고 칭하며 조선에 들어왔다. 임금은 그들을 마치 신격화하며 무조건적인 감사를 표했다. 그들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그저 조선을 도우러 왔다는 생색만 낼 뿐이었다. 심지어 명나라 장군 ‘유정’과 ‘진린’은 일본군과 내통까지 하며 이순신을 배반한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묵묵히 전투에만 집중한다.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늘 적을 두려워했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도 항상 등에 식은땀이 흘러 곧잘 깨어났고, 슬픔을 토로할 대상은 사치였다. 그의 아들 ‘면’이 왜놈에게 팔이 잘린 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 혼자였다. 장수는 울음을 토해선 안 되었기에 그는 갯가의 염전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소금 창고에 들어가 소금보다 짜디짠 눈물을 쏟아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전 겨울, 충남 아산의 현충사에 여러 번 갔었다고 한다. 이순신의 사당에 이순신의 칼을 바라보며 그것의 차가움과 그것의 처연함을 체득했다. 한겨울에 홀로 매달려있는 그 칼은 『칼의 노래』 속 이순신과 같다. 쇠의 냉기를 뿜어내는 칼을 아무도 안아줄 수 없듯이, 이순신 역시 누구의 품도 기대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전쟁통 속에서 생명을 꺼트릴 때 평온했다. 가슴을 부여잡고,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이순신은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비로소 편안히 누울 수 있었다. 이것으로 그의 고독한 전쟁 속 생과 사의 부침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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