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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이야기>
저자/역자
Seton, Ernest Thompson
출판사명
푸른숲 2000
출판년도
2000
독서시작일
2013년 05월 22일
독서종료일
2013년 05월 22일
서평작성자
**

서평내용

 책제목이 원제와 달라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다. 물론 이 책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모든 등장 동물들이 아름답지 못하게 죽는다는 것이다. 죽음이 등장하기 전까지 내용은 정말 흥미롭고 또한 많은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작가도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잘 알고 있어서 정말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본인도 야생 동물들을 보면 고요하게 죽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고 나이가 차서 죽는 경우는 전혀 못 보았다. 야생 동물들은 잘 살다가도 하루만에 시체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고 시체도 남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잘 알려주는 듯 하다. 인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야생동물은 얼마나 강하고 뛰어났던 간에 우리와는 다르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들의 삶 또한 도망의 연속이다. 원래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쳐야 하지만 이제는 인간 사냥꾼이라는 더 위험한 존재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이 책을 보면 포식자보다 인간들이 더 얄미운 존재로 느껴진다. 사실 동물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자신의 욕망을 따라 불필요하게 동물을 마음대로 잡는 것도 인간이다. 포식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사냥을 한다하지만 인간 같이 욕심 많고 사리사욕 챙기는 생물도 없다. 이 책에서 왜 그렇게 인간이 악한 존재로 등장하는지 그 효과를 배가시키는 이유는 인간과 같이 개성있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동물들을 인간은 보자마자 사냥을 위해 또는 자신의 가축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공격한다. ‘인간과 같이’라는 말은 인간 중심으로 생각했었던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한말이지만 동물도 언젠가부터 개성과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몰랐던 것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동물이 생각난다. 주로 개과 동물이었는데 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더 관심이 갔다. 늑대의 왕이라는 뜻을 가진 ‘로보’라는 커다란 대장 늑대의 이야기는 관찰 일기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다른 개과 동물의 이야기처럼 이 늑대의 장점도 영리함이다. 그냥 조금 영리한 것도 아니고 다른 우수한 동물 보다도 더 똑똑하고 빈틈없는 행동을 보인다. 이 책은 그런 모습을 빠짐없이 관찰하고 예를 보여주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도 없다. 다른 늑대들은 걸릴수도 있는 함정에 이 늑대 만큼은 걸리지 않았지만 이 늑대가 덫에 걸려 죽게된 이유는 자신의 암컷 늑대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 늑대의 이야기를 이 책보다 잘 보여줄 순 없을 것 같다. 이 영특한 늑대는 죽을 때까지 그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정말 어떻게 이런 동물이 있을까 할 정도로 인간과 닮았고 그들도 특별한 존재 임을 부각시킨다.


 또 하나는 한 여우가족의 이야기인데 암수 부모와 네마리의 새끼 모두 인간이라는 자연보다 무서운 존재를 만나 가족이 파괴되고 말았다. 인간의 저지른 행동이란 수컷을 총으로 쏴 죽이고 새끼 세마리를 죽이고 새끼 한마리를 데려와 사슬로 묶어둔 것인데 그마저도 결국은 비참하게 죽는다. 그 마지막 새끼는 남은 어미가 찾아와서 젖을 물리고 사슬을 끊으려는 시도 가운데 실패하여 결국 어미가 가져다 준 독 묻은 고기를 먹고 죽는다. 작가는 아마 어미가 새끼가 묶여서 자유를 잃은 상태로 살기보다 죽음을 가져다 주는 것이 더 득이 될것이라 믿고 이런 행동을 한 것이라 믿는다. 본인도 그랬다. 자신의 자식이 적의 손에서 가엽게 사는 것보다 그것을 끝내주는 것이 때로는 강한 모성애의 결과인 것 같다.


이렇듯 이 책의 동물들의 죽음을 부른 것은 모두 인간이었다. 동물들은 자신들이 살아왔던 데로 살려고 하는데 인간들이 그들의 영역을 조여왔고 그 좁아진 영역 속에서 먹이를 충당하기 위해 인간의 영역을 침범했다. 자신의 가축을 지키려는 인간의 의도는 알겠지만 가축을 만든 것 자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하는 행동이다. 본인도 그 이득을 어느정도 보고 있기에 풍족함도 느끼지만 이런 책과 같이 한편으론 죄책감이 많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인간과 동물의 영역을 절충하여 살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평소에도 생각해 본다. 아마 가축을 잡을 필요도 없이 고기만을 생산할 수 있는 생명공학이 발달한다 해도 이미 빼앗긴 야생동물의 터전을 되돌려 줄 생각이 없는 인간의 잔인한 모습이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야생동물들을 살리는 길만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욕망 추구와 그 합리화를 멈추는 방법 임을 모든 사람이 깨닫는 때가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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