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강의 시간때 교수님이 지나가는 말투로 에밀 졸라에 대해서 말하며 드레퓌스 사건과 ‘나는 고발한다’를 말씀하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건데 하면서 생각하다가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서 그 책을 마주했을 때. 영화 부러진 화살의 최후 변론 때 말했던 그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초반의 내용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고, 또 나는 고발한다 의 내용은 아주 뒤에 나왔기에 별로 재미도 없었고, 수많은 인물들 때문에 헷갈리기도 했었다. 마치 주인공들이 아주 많이 나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와 같은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지루한 기분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사라지고, 분노를 계속 느끼게 했다.
중반 이후부터는 정말 빨리 넘어갔다.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를 신문 지면에 싣는 내용과, 그 ‘나는 고발한다’의 내용, 재판에 져서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기도 했고 결판이 나지 않은 채로 에밀 졸라가 죽는 것과 마지막에 드레퓌스가 결국 무죄로 판명나고 훈장을 받고, 다시 군대로 돌아가는 내용과 그 뒤에 드레퓌스의 삶의 이야기까지.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마치 한 편의 역전 재판 소설을 읽듯이 읽어내려 갔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또 다른 생각은 지금 우리의 삶이 이때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가장 무서운 독재는 여론의 독재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과 비슷한 것 같았다. 이번에 박시후 사건 같은 것도 처음에는 박시후가 죽일 놈이었다가 이젠 고소한 여자가 죽일 년이 되었고, 또다시 거짓말 탐지기가 박시후의 말이 거짓이라고 판명나자 또 다른 말들이 나오는 것 같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또는 대의 민주주의의 함정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 “다수가 항상 소수보다 옳지는 않다.”라는 말이 있다. 드레퓌스 사건 이후에 세계 역사에서는 또 한 번의 대중의 집단 발작성 사건이 세계 2차대전 중에 일어났다.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사건 때도 독일 내에서의 소수의 지식인들은 그 학살에 대해서 반대하고 몰래 사람들을 숨겨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 지식인들은 얼마나 옳은가를 생각해보면 가슴이 울리지 않을까.
나는 지금 스스로 나를 고발한다. 다수의 의견에 편승해 그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그저 동조하는 내 모습을 고발한다. 비판적으로 내 모습도, 그리고 의견을 검토해서 옳게 행동할 지식인이 되기로 다짐하면서 나는 나를 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