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긴 소설을 하루만에 독파하긴 처음이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 캐스트에 김영하 작가님이 게스트로 출연하신다는 말을 듣고서는 빌렸던 책인데, 2주동안 천천히 읽어보면 되겠다고 생각하다 첫 장을 펼치고 에필로그를 읽는 순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도 모르고 밤이 새도록 읽고 말았다. 나는 쉼없이 제이를 쫓고 또 쫓았다.
에필로그는 사실 이야기의 전체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서커스의 단장과 소년의 이야기인데, 밧줄을 타고 올라가버린 단장과, 그걸 빤히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홀로 남은 소년. 얼핏 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라 나는 ‘이 소설이 판타지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 소설은 판타지도 아니고, 비현실적이지도 않고, 너무나 현실적인, 적나라한 현실의 이야기였다.
제이라는 소년이 고속버스 터미널 화장실에서 태어난다. 길에서 태어난 제이는 말을 못하는 친구 동규 옆에서 그의 마음의 소리를 읽으며 그와 지내게 된다. 그러던 중 제이가 사는 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며 그의 거처를 잃게 되고, 제이는 홀로 남겨져 길과 길을 헤매는데, 그 길에서 제이는 많은 아이들을 만나며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랄만큼 조악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 시절 제이는 겨우 중학생이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생활들을 아이들은 하고 있었다. 집을 나온 각각의 아이들이 하나의 집에 모여 살며 벌어지는 행위들. 거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그들은 최악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 속에서도 지켜야 하는 원칙 속에서 제이는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솔직히 이곳의 생활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냐고. 아직 스무살이 채 되지도 않은 아이들이 혼숙을 하고, 원조교제로 돈을 벌어오고, 난교를 일삼지 않나, 그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은 너무나 당연하다. 과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가.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들을 작가는 너무나 태연하게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필체에서는 일말의 연민도 없어보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팟 캐스트를 통해 그의 말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그는 이 소설에서 언급했던 행위들보다도 실은 더 암담한 현실이 도래해있다고 했다. 그가 조사했던 내용들에 비해 이 글은 상당히 미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이런 현실을 쓴 글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이유는, 우리가 그런 것들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들이 실제로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비참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의 혼숙과 난교, 원조교제 등이 실은 우리와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걸 안다고 해서 변할 것은 없으니까. 우리는 그것말고도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우리는 그걸 바꿀 힘 따위 없으니까. 우리는 이런 저런 핑계들을 가지고 그들을 등한시했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의 눈길에서 멀어져 갔던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보니 나도 그런 ‘우리’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다. 비행청소년들을 욕할 줄만 알지, 그들이 왜 저렇게 지내고 있으며, 저 생활보다도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일말의 연민이나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었다. 나는 저렇게 안 살아왔으니까 됐어. 내 인생 아니니까. 하는 말들로 나는 그들을 내 관심에서 없어지게 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만의 그라운드에서 생활하게 됏다. 무관심과 방치의 결과다.
그곳에서 그들은 제이를 만난다. 그곳에 들어간 제이는 그들 사이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제이의 독서는 아파트 재활용품처리장에 나온 책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므로 계통도 체계도 없었다. (147p.)
제이는 그동안 길에서 생활하며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그의 독서법이 유난스럽다. 작가들은 책의 앞과 뒤에 독자를 홀리는 소스를 넣곤 한다는데, 그것에 홀리지 않기 위해서 앞과 뒤를 읽지 않고 중간부터 중간까지만 읽는다는 것이다. 책의 전체를 읽는 보통의 경우와는 다르게 읽는 제이는 그래서 남들과 더 다른 관점에서 책을 읽어온 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서 그의 세계가 남들과 다르고, 더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세계를 만들고 나니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따라 그를 따르기 시작하고, 소설은 청소년들의 삼일절 대폭주의 그 날까지 이르게 된다.
“그 턱수염이 이런 말 한 것도 기억나? ‘붓이 일단 종이에 닿으면 그때부터는 절대로 머뭇거리거나 멈춰서는 안 돼. 처음에 생각한 대로 쭉 그어 내리는 거야’라고 했어.” (…) “그런데 만약 그 붓질을 나 혼자가 아니라 수천, 수만이 한다고 생각해 봐. 내가 생각하는 그림은 그런 거야.” (165-166p.)
삼일절 대폭주를 이끌어 가는 우두머리가 된 제이는, 솔직히 말해서 멋있다. 바르고 곧게 자라나야 할 어린 아이들이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고 그 위험한 오토바이를 엄청난 속도로 시끄럽게 달리는 그 모습이 실제로 참 멋있기도 하겠냐만은, 제이가 그 많은 아이들을 통솔하여 이끄는 그 리더십이 대체 어디서 나오나 싶었다. 위험하다며 만류하는 아이들에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는 소름 돋는 말까지 하니. 어찌 그를 단지 말 안 듣는 비행청소년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소설이 끝나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리다. 길에서 태어나 반짝거리며 살아도 모자랄 그 멋진 나이에 제대로 따뜻한 밥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길에서 지내는 제이를 생각하면 난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한 번이라도 손길 한 번 내어 주었다면, 그에게 내가 좋아하는 책이라도 한 권 읽어보라며 쥐어주었다면, 그랬다면 제이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소외받을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인생에 손길 한 번 내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