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센지트 두아라의 민족으로부터 역사를 구출하기라는 책이 있다. 원제는 Rescueing HIstory from nation-state. 나도 수업시간에 짧게나마 읽은 것이라서 다 읽었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총론에서 그가 지적하는 문제는 분명하다. 헤겔철학과 사회진화론에 근거를 둔 식민지 제국주의는 다른 민족을 이해하려하지 않고 민족으로 여기기를 거부하고 역사도 없는 아주 미개한 인종으로 보았다는 것. 그래서 심지어 서구가 그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써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문화라는 이름아래 식민지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것.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으며 두아라의 책이 생각이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는 세계 명작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책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10대때 읽었을 때 다르고 20대때 읽었을 때 다르고 30대에 읽었을 때 다르다고 한다. 나는 어린 왕자를 자주 읽진 않았지만 위의 말을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할 것 같다. 어느 책이나 독자의 성장에 따라 다가오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다른 책보다 이 책이 유독 그렇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절반정도 섞인 작은 나무가 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며 겪는 이야기들과 가르침들이다. 중학생 때 학교에 독후감을 써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읽었긴 했지만 지금 다시 읽으니 그 때와 또 다르게 보인다. 중학교 때는 인디언들의 생활방식과 철학을 처음 보아서 신기하고 우리 옛 선조들의 생각과 비슷한 부분도 많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이 따뜻해서 밤새 읽었다. 지금도 중학교때와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때보다 안타까움이 더하다. 이 시절이 1900년대 초반의 미국 이야기지만 너무나 가깝게 여겨진다.
같은 시기에 미국 동부에서 서부를 개척하러 간다는 미명 하에 엄청난 살육과 만행이 이루어진다. 이것을 프론티어 정신이라고까지 부르며 그들은 전진했다. 지금와서 보면 아주 오만한 생각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누가 누구를 함부로 가르치고 개척한단 말인가? 어째서 그들의 기준은 옳은 것이면 다른 이의 기준은 좋지 못한 것인가? 작은 나무도 이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평화롭게 산에서 보내던 하루하루 끝에 결국에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인디언의 교육방식은 잘못되었으며 이 아이가 후에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회를 가야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이 프론티어 정신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눈물의 여로로 체로키 인디언을 강제이주시킨것도 모자라 이제는 후손마저 미국 사회에 편입시키겠다는 무서우리만치 잔인하고 세세한 백인우월주의의 침략이다.
현재에도 따로 말하기 힘들만큼 프론티어가 곳곳에 남아있고 침투하고 있다. 팝송과 할리우드 영화는 세계단위로 배급하고 판매한다. 해당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거나 하지 않아도 판매가 잘 된다. 노래나 영화가 재밌고 좋은 걸 떠나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왜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는 컨텐츠를 기꺼이 구매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제3세계 국가(이 개념도 프론티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의 컨텐츠보다 당연한 듯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가? 노래나 영화가 재밌고 좋다는 것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인가? 이렇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서구의 문화는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확산된다. 동시에 자국의 문화는 비교적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비춰진다.
이것이 1900년대의 프론티어를 떠올리며 지금과 전혀 다른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다.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의복부터 사고까지 식민주의는 확산되고 있다. 만약 이 책이 없었다면 체로키 인디언의 철학을 알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자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노력이 자국문화를 지키는 역사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싫어하고 멀리 했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해야겠다. 역사는 민족 최후의 보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