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또 다른 이름은 간절함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신은 그 기도에 화답한다.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병든 고아들에게 일어난 수많은 기적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리라.”
;-조병국, <할머니 의사 청전기를 놓다> 中 –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시절 두 명의 동생을 잃고
한국전쟁 동안 버려진 아이들을 보며 의과 대학에 진학을 결심한다.
그 후, 50년 동안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간다. 책의 저자인 조병국 할머니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다.
흔히 ‘추억’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불리는데, 작가의 기억 속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추억’으로 불리기에는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픈 기억이 훨씬 많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도
기적처럼 희망이 자라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둘 머릿속에 남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몇십 년도 더 된 가슴 속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글을 읽는 동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 동물, 식물을 통틀어
그들의 ‘존재(存在)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아름답지만 절대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에서
할머니 의사 선생님께서 만난 6만여 명의 입양아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작고 여린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 마음을 어루만지는 아이
책의 초반에는 지적 장애인인 스무 살 현군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현군이는 성년이 되었지만 정서 발달이 불안해 자원봉사자는 물론이고
사회복지사들까지도 통제하지 못했던 아이였다.
그런 현군이가 홀트 일산복지타운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달라진다.
작고 힘없는 장애인이 부르는 한없이 고운 노래는
자신보다 더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을 위로해준다.
노래를 잘해서 성공해야겠다는 욕심도,
자신의 노래로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감동을 줘야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애써 따져 묻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랬다.
현군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맑고 청아한 그의 목소리로
거칠고 척박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현군이가 이세상을 살아가는 존재(存在)의 이유였다.
– 삶이 선택한 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중엔 몇 번을 태어나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부모’와 ‘자식’이다.
우리 누구에게나 당연히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
한편, 세상 어딘가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이들도 있다.
책 속에 그려진 한 생모는 멀쩡한 두 살배기 아들을 안고
동반자살을 시도해 철로로 뛰어들어 아이의 두 다리를 잃게 한다.
그 이후 아이는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졌지만, 지적 장애가 없음에도
의족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컸기에 양부모가 쉽게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몇 달 뒤, 양아버지가 장애인 보조기구를 처방하는 일을 한다며
입양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그로부터 2년 뒤, 작가는 양부모로부터 의족을 한 채
아이가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편지를 전해받는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동안, 생모도 잃고 두 다리를 잃은 채
아이를 굳이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교만한 생각에 불과했다.
아이를 이토록 처참한 모습으로 살려둔 이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삶은 아이를 선택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이유는
아이 앞에 놓아둔 부모님의 사랑으로 인해 행복할 미래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 아이의 쓰라리도록 아름다운 존재(存在)의 이유였다.
– 하늘에서 내려 준 천사, ‘엄마’
대개 단체보육시설의 아이들은 더디게 자란다고 한다.
넉넉하게 먹이는 데도 늘 생기가 없고 병치레가 잦은 이유는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쌀 한 톨, 우유 한 모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맞추고 품에 안아주고 실컷 투정을 부려도 받아주는 한 사람,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엄마 덕분에 세상을 만나지만
각각의 이유로 엄마의 품에서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버려진 아이와 발견된 아이의 차이기도 하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가 희망적인 것은
또 다시 누군가 그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선물해 줄 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것이 발견된 아이의 존재(存在)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늘 ‘오늘’이라는 시간의 아쉬움과 고뇌, 쓰라림을 맛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삶은 극단적인 굴곡 없이 평탄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내 삶에는 기적이 없을거라 생각했었다.
책을 읽는 중에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 장, 한 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이전에 몰랐던 기적의 존재를 느끼고 있어서였다.
올해 초부터 1년을 약속하고 꾸준히 찾게 된 곳이 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5,6학년이 될때까지 엄마의 울타리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아이들이 상처에 아파한다면 내가 그것을 보듬어 안아 줄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보듬어 안아 준 나의 품이 진심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래서 하루, 하루 그들을 만나는 것은 내게 용기였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나보다 더 밝게 웃고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며, 더이상의 용기는 필요치 않았다.
“선생님, 오늘 시계 바뀌었네요.!”
“선생님, 오늘은 옷이 올 화이트네요??!!”
하는 그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밝은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세상의 냉혹함이 불쑥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었을 때, 부디 아이들이 조금이 일찍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토록 힘든 세상에도
너희가 존재(存在)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내가 너희를 만난 “기적같은 일”처럼 말이다.
,”기적의 또 다른 이름은 간절함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신은 그 기도에 화답한다. 의학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병든 고아들에게 일어난 수많은 기적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리라.”;-조병국, <할머니 의사 청전기를 놓다> 中 –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시절 두 명의 동생을 잃고
한국전쟁 동안 버려진 아이들을 보며 의과 대학에 진학을 결심한다. 그 후, 50년 동안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간다. 책의 저자인 조병국 할머니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다.
흔히 ‘추억’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불리는데, 작가의 기억 속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추억’으로 불리기에는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픈 기억이 훨씬 많았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도
기적처럼 희망이 자라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둘 머릿속에 남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몇십 년도 더 된 가슴 속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얼마나 아팠을까.
글을 읽는 동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 동물, 식물을 통틀어
그들의 ‘존재(存在)의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아름답지만 절대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세상에서
할머니 의사 선생님께서 만난 6만여 명의 입양아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작고 여린 생명의 의미와 가치를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 마음을 어루만지는 아이
책의 초반에는 지적 장애인인 스무 살 현군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현군이는 성년이 되었지만 정서 발달이 불안해 자원봉사자는 물론이고
사회복지사들까지도 통제하지 못했던 아이였다.
그런 현군이가 홀트 일산복지타운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달라진다.
작고 힘없는 장애인이 부르는 한없이 고운 노래는
자신보다 더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을 위로해준다.
노래를 잘해서 성공해야겠다는 욕심도,
자신의 노래로 반드시 다른 사람들을 감동을 줘야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애써 따져 묻지 않아도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랬다.
현군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맑고 청아한 그의 목소리로
거칠고 척박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현군이가 이세상을 살아가는 존재(存在)의 이유였다.
– 삶이 선택한 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 중엔 몇 번을 태어나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부모’와 ‘자식’이다.
우리 누구에게나 당연히 ‘엄마’라는 존재가 있다.
한편, 세상 어딘가에는 친부모와 양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이들도 있다.
책 속에 그려진 한 생모는 멀쩡한 두 살배기 아들을 안고
동반자살을 시도해 철로로 뛰어들어 아이의 두 다리를 잃게 한다.
그 이후 아이는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졌지만, 지적 장애가 없음에도
의족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컸기에 양부모가 쉽게 나타날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몇 달 뒤, 양아버지가 장애인 보조기구를 처방하는 일을 한다며
입양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그로부터 2년 뒤, 작가는 양부모로부터 의족을 한 채
아이가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편지를 전해받는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동안, 생모도 잃고 두 다리를 잃은 채
아이를 굳이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교만한 생각에 불과했다.
아이를 이토록 처참한 모습으로 살려둔 이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삶은 아이를 선택했고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이유는
아이 앞에 놓아둔 부모님의 사랑으로 인해 행복할 미래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 아이의 쓰라리도록 아름다운 존재(存在)의 이유였다.
– 하늘에서 내려 준 천사, ‘엄마’
대개 단체보육시설의 아이들은 더디게 자란다고 한다.
넉넉하게 먹이는 데도 늘 생기가 없고 병치레가 잦은 이유는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쌀 한 톨, 우유 한 모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을 맞추고 품에 안아주고 실컷 투정을 부려도 받아주는 한 사람,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엄마 덕분에 세상을 만나지만
각각의 이유로 엄마의 품에서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버려진 아이와 발견된 아이의 차이기도 하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가 희망적인 것은
또 다시 누군가 그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를 선물해 줄 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것이 발견된 아이의 존재(存在)의 이유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늘 ‘오늘’이라는 시간의 아쉬움과 고뇌, 쓰라림을 맛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삶은 극단적인 굴곡 없이 평탄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내 삶에는 기적이 없을거라 생각했었다.
책을 읽는 중에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 장, 한 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이전에 몰랐던 기적의 존재를 느끼고 있어서였다.
올해 초부터 1년을 약속하고 꾸준히 찾게 된 곳이 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5,6학년이 될때까지 엄마의 울타리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아이들이 상처에 아파한다면 내가 그것을 보듬어 안아 줄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게 보듬어 안아 준 나의 품이 진심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래서 하루, 하루 그들을 만나는 것은 내게 용기였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했다.
나보다 더 밝게 웃고 소리치는 아이들을 보며, 더이상의 용기는 필요치 않았다.
“선생님, 오늘 시계 바뀌었네요.!”
“선생님, 오늘은 옷이 올 화이트네요??!!”
하는 그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밝은 아이들에게도 언젠가 세상의 냉혹함이 불쑥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었을 때, 부디 아이들이 조금이 일찍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토록 힘든 세상에도
너희가 존재(存在)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내가 너희를 만난 “기적같은 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