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가이며 ‘독서일기’의 저자로도 유명한 독서가 장정일 씨가, ‘공부’하듯이 읽어내려간 책들을 소개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 평가 등을 담고 있다. 이 책을 골라 읽게 된 중요한 이유는 서론에서 저자가 펼친 이야기 때문이었는데, 저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중용’을 얘기하며, 거짓 ‘중용’의 자세를 비판한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한 쪽의 편을 들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있어 보이는 중용의 자세를 취한다는 거다. 물론 저자 역시 그랬다고 고백하며, 진정한 중용의 사람이 되려면 양 극단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전 내용을 통틀어서 내가 제일 감동받고 공감한 내용은 이 부분이었다. 사실 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여러가지 분야에 대해 연관된 갖가지 책을 읽고, (역사, 문학,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에 관한 공부 이야기들인데, 서론부에서 내가 책을 읽고자 하는 이유와, 내가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깔끔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 마냥.
‘공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 마냥, 책 내용은 딱딱하고 어렵기도 하고 좀 재미 없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작가의 말 대로 공부는 남이 시작해주고 내가 끝내는 일인 것 만큼, 다음 기회에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기로 했다. (소개해 준 책을 읽겠다)
아래는 내가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서론부 내용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찔릴 거라고 생각한다.
중용의 미덕인 우리 사회의 요구와 압력을 나 역시 오랫동안 내면화해 왔다.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한번 생각해보라. 모난 사람, 기설을 주장하는 사람, 극단으로 기피받는 인물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 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하고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느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 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 였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 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중략..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