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지나, 남의 일기 훔쳐보는 것은 참 재밌다.
그런 의미에서 키다리 아저씨는 소설이라기보단 남의 편지 훔쳐보는 기분이라서 재밌게 읽었다. 일기 쓰듯이 하루 일과를 조잘조잘 말하다가, 분에 차는 일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화도 내고, 고아라는 것에 대해 풀이죽다가도 곧 다시 괜찮다고 스스로를 일으키는 성격. 고아 제루샤는 주디라는 애칭으로 편지를 쓰면서 대학생활과 함께 성장한다.
이 수업은 점수를 잘 받았고, 어떤 친구의 잘난척은 사실 좀 싫다, 어디를 가고 싶은데 키다리 아저씨가 말려서 못 가니깐 화가나서 3줄 단답형으로 편지를 보내며 제루샤라는 본명을 쓰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20대 여학생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가끔 주디가 철없는 행동을 할 때면, ‘그러는거 아니야’ 하며 답답하기도 했다. 사는 시대는 달라도 대학생 또래라서 그런지 감정이입이 더 잘됐다.
책을 보면 ‘주디’ 라는 인물 속에서 작가가 어떤 것을 추구하고 있는지가 간접적으로 보인다. 고아에 관심이 많고, 하루하루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그럼에도 감정에는 솔직한 편인. 주디와 꼭 닮은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주디는 고아였고 늘 고아원일과 씨름했지만 작가의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확고히 노력하고 또 이루었다. 키다리 아저씨가 이러한 주디의 면을 보고 후원해준건 아닐까.
어쨌든, 작가 주디가 이렇고 저렇고 투정부리다가 깨닫고, 반성하는 등의 편지 내용은 지금 다시 읽어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