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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만난 또 다른 세상
저자/역자
금성일기
출판사명
북폴리오 2003
출판년도
2003
독서시작일
2011년 01월 29일
독서종료일
2011년 01월 29일
서평작성자
**

서평내용






































‘아버지’를 상상하면 듬직함, 믿음, 보호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서의 아버지는 좀 다르다. 겁 많고 소심하다. 나는 가네시로 가즈키 소설의 주인공 ‘더 좀비스’의 열혈 팬이어서 이 책이 전작인 「레볼루션 NO.3」를 잇는 소설이라기에 바로 손이 갔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는 순간, 전작의 내용은 까맣게 잊고 스즈키 하지메의 일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소설은 고교 복싱 선수에게 폭행을 당한 딸의 복수를 하기 위해 복싱을 배우는 아빠의 이야기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던 아빠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 사건이라 하면, 복수를 하기 위해 칼을 들고 가해자의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로 찾아간 사건이라고나 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빠는 거기서 더 좀비스를 만난다. 더 좀비스는 사고뭉치이지만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이상한 힘에 이끌린 것일까, 아빠는 더 좀비스의 멤버인 순신에게 복싱을 배우며 평범하기 그지없던 일상을 새롭게 바꾸기 시작한다. 짧은 문장 호흡과 간결한 문체, 가끔씩 등장하는 몸개그의 조합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전혀 지루하지 않게 했다. 오히려 생동감 넘치고 흥미진진하기까지 한다. 대부분의 일본 소설에는 없는 ‘절정’이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는 있다. 결말이 조금 허무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가장 최선의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빠는 칼을 들지 않고도 복수에 성공했으니까 말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다.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왜 하필 복싱일까? 그냥 칼놀림을 배워서, 혹은 사격을 배워서 쉽게 이기는 방법도 있는데 왜? 이 의문은 금방 풀렸다. 순신은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을 지키고 싶은 거지? 아저씨.” 진짜 중요한 것은 자기의 손으로 직접 지켜야 한다는 거다. 칼이나 총, 캔 커피나 볼펜이 아니라.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왜 순신은 싸움을 잘 할까, 였다. 하지만 이 의문 또한 금방 풀렸다. 소설 중간에 등장한 일본인 깡패와의 결투 신에서, 순신은 재일교포라는 이유만으로 시비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한 차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자기를 단련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순신 나름대로 이 세계를 버텨 온 방법일 것이었다. “아저씨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달라.” 이 한 마디에서, 그의 살아온 인생이 대충 짐작이 갔다. 일본인은 모르는 그런 세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내 뇌리에 깊숙이 박힌 장면은 아빠가 칼을 들고 복수하러 가는 장면도, 고교 복싱 챔피언과 싸우는 장면도 아니다. 순신과 복싱 연습을 하는 장면 모두가 베스트 신이다. 순신은 책 속에서 고등학생의 나이이지만, 드러나지 않게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것이 묻어 나와서, 나는 순신의 대사들이 가슴으로 맞닿아왔다. “자신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겠지. 고작 자신의 반경 일 미터 정도만 생각하고 태평하게 살다가 죽으면 행복할 텐데 말이야.”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뜨끔해질 정도였다. 나는 너무나도 인생을 안일하게 살아왔고, 그래서 아직 세상을 모른다. 이 책을 선택한 건 지극히 우연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그 우연 속에서 또 다른 세상들을 발견했다. 아빠들의 세상, 재일교포의 세상, 주먹과 복싱의 세상, 내 세상 밖의 세상.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세상들이 혼재하고 있고,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세상들을 맛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세상의 벽을 깨고 나아가는 일이다. 잠시나마 맛본, ‘난생 처음’이 가득한 이질적인 세계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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