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에 대한 편견 하나.
그는 심한 지적권위주의다.
근데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에대한 편견도 사라졌다.(아니 어쩌면 편견이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나는 한동안 진중권씨의 팬이 되었다)
획일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은 결국 스스로 기호가 되기를 거부하고 난해한 형상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어디론가 모르게 꼭 꼭 숨어버린 예술의 형태는 오직 시대의 환경과 수용자의 감각만이 해독의 열쇠를 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예술이 수용자의 인식에 따라 해석이 여러가지로 나눠질 수 있다는 말인데 그 해석의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모든 사람들이 다 불쾌하게 생각하고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어떤 물건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오직 한사람. 딱 그 사람 혼자만이 그것을 아주 고귀한 숭고미의 절정이라고 여긴다면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없다는 말이 되는데 왜 우리는 그 사람을 비난하지? 여기서 잠깐!
개똥이 : 에이… 세상엔 약속이 있어 약속이. 우린 예술이라고 칭할만한 어느정도의 선을 그어놓고 거기서 예술과 비예술을 따져야돼. 되도 안한걸 가지고 한낱 변기니, 예술이니 라고 따질 수도 있으니 말야. 그런 혼란이 오는 걸 사회의 약속을 통해서 미리 막아야지.
꽤 그럴듯한 말이다. 그 기준과 약속만 있다면 굳이 이런 골치아픈 생각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근데..
소똥이 : 도대체 그 ‘선’과 ‘약속’을 누가 정해준단말인가. 당신이? 아님 내가? 그것도 아니면 명문대학의 예술학도교수들이??
정말 미학에 관해 읽다보면 끝도없는 질문들이 쏟아지기 마련이다.어떻게 정리를 해가며 읽어야 이런 철학적인 생각에도 나름의 깊이가 생기지 그냥 무작정 읽어대면 말 그대로 시간죽이는 것 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도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아직은 내가 읽기 버거운 (책을 내가 90% 이상 소화를 못시키겠다.) 철학책보다야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꽤나 쏠쏠한 생각을 가지게끔 해주는 미학책이 훨씬 나은 듯 싶다.
우리가 평소에 궁금해했던 그 난해한 철학을 미학과 함께 엮어서 유쾌하게 풀어내는 재미있는, 농담도 꽤 즐길줄 아는 미학자 진중권.
시뮬라크르로 인해 예술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결론에 내가 동의를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설득력이다.
올해 유일하게 두번 반복해서 읽은 책.
참! 에이젠슈타인이 피라네시의 광팬이라는 것을 몰랐다. 오늘 전함포템킨이나 한번 더 봐야겠다! 정말 그가 피라네시의 광팬인지 아닌지 한번 두 눈으로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