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의 주인공은 파우스트로, 그는 자연과 세계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 마법사이며,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하고 방황하다가 결국 파멸하고 단죄를 받는다. 이는 중세의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며, 인간이 세계의 근본적인 비밀을 알고자 하는 시도는 신성에 대한 도전이 된다.
전설을 당시의 시대와 연결지어 본다면 이 전설 속의 파우스트라는 인물은 기독교의 권위와 금기에 맞서 인간중심주의를 추구하는 인간형의 표본으로 볼 수 있다.
괴테는 이러한 전설을 당시의 현대적인 바탕으로 재해석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파우스트’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근대세계를 탄생시키고 지탱해 온 그러한 인간중심주의와 맹목적 발전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담고 있다. 파우스트는 스스로의 주인이 되기를 갈망하며,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고, 무한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행복을 누리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영혼을 팔아야하는 악마와의 계약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파우스트의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악마와의 계약에도 불구하고, 그의 욕망은 해소되지 못하고, 또한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충족을 모르는 그의 욕망은 결국 죽음을 부르고, 자신의 욕구와 신념에 충실하면 할 수록 파괴적 혼란을 초래하는 비극적 결말만 나타난다. 그의 행동과 실천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결과를 낳기만 한다. 더 이상 나아갈 수도 없는 만족의 끝는 결국 자기 파괴로 나타난다.
괴테는 파우스트라는 인물의 파괴과정을 통해서 맹목적인 욕구 충족과 발전주의의 끝을 시사하는 듯 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뉘우침과 용서와 사랑으로 끝나지만, 그는 그런 비극적 과정을 통해서 현대인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를 성찰해 볼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