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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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피해자’에서 ‘인간’ 자체를 바랐던 그녀들의 삶을 재구성하다
도서명
저자/역자
핼리 루벤홀드
출판사명
북트리거
출판년도
2022-02-25
독서시작일
2023년 11월 23일
독서종료일
2023년 12월 09일

서평내용

-사건의 재구성의 필요성

 잭 더 리퍼라고 한다면 TV의 어느 프로그램에서 흉악한 살인마 중 한 명으로 표현되어 잔인한 수법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최악의 범죄자로 한 번 어렴풋이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예전에 살인마, 범죄자, 논란의 인물, 최악의 사고, 이상하고 기이한 현상 등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유심히 본 적이 있어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그들에 대해 어떻게 인간으로서 저런 생각을 하고 감히 행동에 옮길까라고 보면서 그 범죄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도 받지 않고 죽은 것에서 분노하는 피해자들과 유족 분들에게 공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비참하고 고통의 시간에 있는 이들에 대해 정확히 찾아보겠다는 생각은 정작 들지 않았고 그렇게 사건은 내 머리 속에서 잊혀지게 되었으며 그것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피해자 분들과 유족 분들, 관련된 이들에게만 충격적이고 평생 망각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가는 흉터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일은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사건이었기에 언젠가 잊혀질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억들은 뉴스나 기사와 언론에 퍼진 글과 말을 믿어 사건의 원흉을 색출하여 비난하기에 바쁘지, 정작 피해자와 유족 분들에게는 관심을 처음에는 주기 시작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잊게 되고 그렇게 그들의 깊게 새겨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사과나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를 많이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그러한 피해자에 대한 주의깊게 다룬 이야기이다. 이전의 나는 위의 경우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로 범죄자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만 고집했지, 피해자들의 이름이나 목소리와 진짜 이야기를 알아보거나 들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유명 살인 사건의 진실

 이 책은 그러한 생각을 아예 뒤집어 버리는 피해자의 일생 일대기와 생각, 행동을 마치 위인전처럼 묘사하면서 언론과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꿋꿋이 버텨나가는 5명의 여자가 잭 더 리퍼라는 별칭의 살인마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하기 전까지 어떻게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갔는지를 자세히 표현한 서적이다. 이 피해자들은 잭 더 리퍼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고 매춘부와 창녀라는 이미지로 언론의 선동으로 인한 비난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일생의 이미지가 사건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러한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아 있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러한 생각을 애초에 할 수도 없었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이러한 생각들은 잭 더 리퍼라는 이름에 생소한 사람들 또한 보통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매춘부와 관련된 살인 사건으로 인식하였고 피해자가 매춘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몰입하여 그러한 매춘부라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피해자들이 조금 잘못했긴 했지라는 인식에 꺼려지는 것이 존재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보통 매춘부나 성매매와 관련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혀 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있으나 진실은 딴판이다. 바로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며 그러한 진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5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중에서 나는  케이트라는 피해자가 아닌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인간’ 케이트 이전의 그녀는..  

 케이트는 1843년 영국 울버햄프턴이라는 도시에서 양철 제조업에 종사한 숙련 노동자의 집안의 무려 12남매 사이에서 여섯째로 태어나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런던으로 가족들이 이주하여 양철-구리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생활을 그럭저럭 잘 유지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12남매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학교를 다니게 하려고 노력하여 케이트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다른 이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다가 13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병을 시달리게 되자, 그녀의 언니들은 삼촌이 있었던 울버햄프턴으로 보내어 일하게 하였다. 케이트는 삼촌에게 추천받은 양철 제품을 산성 용액에 넣어 부스러기를 제거하는 눈과 목에 부담가는 양철 세척부로 일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 습관을 가지게 되고 공장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을 들키자 삼촌의 집에서 쫓겨나 버밍엄으로 가서 톰이라는 구두장이면서 권투를 부업이었던 삼촌과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 또한 칠기를 천으로 닦는 만만치 않은 고된 작업으로 동이 트기 전에 시작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전과 다름없는 노동에 지친 그녀는 토머스라는 인도에 군인으로 파견되었다가 병으로 행상인으로 직업을 전환한 한 남자에게 서로 끌리게 되면서 정식 결혼보다 동거의 형태로 아이를 임신하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종 이야기를 팔면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은 공장의 환경에 못지 않을 정도로 수익이 시원찮았고 게다가 아이를 구빈원에서 낳을 만큼 따로 마련된 주거 공간도 보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였고 한 죄인의 공개 처형식을 토대로 쓴 시의 발라드를 노래하면서 큰돈을 벌게 되면서 런던에 다시 정착하게 되었고 언니들과 가까운 지역에 거주하면서 문신을 새기고 결혼한 언니들과는 다른 삶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정착한 이후 기대에 못미치는 수완을 얻게 된 토머스는 요크셔로 가서 일거리를 찾았으나 이는 사실상 그녀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버린 것이었으며 더욱이 그는 그녀에게 음주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여 그녀의 삶이 한순간에 불행으로 이어졌다.

 또한 그녀의 술을 마시는 습관과 주사로 그동안의 언니들의 교류를 단절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여 결국 토머스는 1881년에 결별을 선언하였고 케이트는 존 켈리라는 남자와 사귀게 되면서 여인숙에서 거주하였다. 술을 즐기는 버릇과 외향적인 성격이 공통점인 그들은 서로 잘 맞게 되어 파출부와 육체노동으로 돈을 벌었으나 그다지 그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것은 여인숙에서 오래 거주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떠돌며 구빈원의 임시방과 여러 여인숙을 반복해서 사는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존이 그녀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현실적인 필요에 의한 관계에서 서로 좋아하는 사이를 계속 유지하여 끈끈한 연결력을 보여주었으며 그는 그녀가 살해당한 후에도 증인으로 진술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삶은 이후 그와 함께 동행하다 여인숙에서 잠을 청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서로 헤어져서 그녀가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우다가 유치장에 갇혀있다가 경찰서에서 풀려나자 존을 찾으려 어두운 거리를 방황하다 포기하고 어느 한 건물의 귀퉁이에서 등을 기대면서 잠을 자다 1888년 9월 30일 새벽에 잭 더 리퍼의 손으로 종결되었다.  

-근대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다

 이 책의 그녀의 일생을 담은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선 서양 근대는 우리가 상상하던 것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통 생각하던 서양의 근대는 그 당시에 혁신적인 기계가 연이어 발명되어 세상에 등장하고 그래도 중세라는 시대보다는 더 편한 방식으로 노동하고 있겠다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 19세기에도 기계보다는 수작업으로 일하는 방식이 채택되었고 환경도 뿌연 연기가 가득한 하늘과 폐수로 뒤덮인 강물의 그야말로 최악의 노동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케이트의 부모가 겨우 40대에 사망한 이유가 종종 질병에 걸릴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서양 근대 노동자의 평균 나이가 짧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고 케이트의 가족들이 사는 주거 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배수와 정수도 제대로 된 것도 아니고 환기도 안 되며 수도 시설 또한 정비가 되어 있지 않는 공장 못지 않게 열악한 상황이었고 게다가 임금도 12남매를 양육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러한 여건에서 아무리 숙련노동자라는 노동자로서 나름 자부심 있는 집안이라도 책을 사거나 글을 읽을 학력도 어림이 없었으며 따라서 피임할 방법도 몰랐던 가난한 사람들이 성관계에 관련된 물건을 살 정도의 여유도 없을 정도로 생계가 빠듯하였기에 피임도 하지 못하고 그냥 아이를 임신하면 출산하는 단순한 방식으로 아이를 과도하게 12남매까지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다산은 임신한 상태에서 아이를 양육하거나 심지어 부족한 생계비를 벌기 위해  노동하기까지 계속 이루어졌는데, 이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의 선진국에서는 선망하는 출산율을 성취하는 이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그 당시 가난한 가정들에게는 그다지 축복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비와 건강을 깎아먹는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그럼에도 계속 아이를 낳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 책에서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서양 근대의 노동자를 비롯한 빈곤한 계층의 사람들은 정보와 생활, 건강을 챙길 수 없던 비관적인 배경을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근대 복지 시스템을 대표하는 구빈원

 그리고 구빈원이라는 시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서 당시 구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인식할 수 있었다. 구빈원이라는 시설은 이 책의 다른 여자의 이야기에서도 거론되었는데, 영국 정부에서 신구빈법이라는 법을 제정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나태하고  국가의 구제에만 의지하지 않고 도덕적이고 성실한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 구빈원을 설치하여 그곳에서 그들의 삶을 통제해 근면한 삶을 표방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떠한 사연에도 무시당하여 밀가루죽과 치즈를 주식으로 주면서 성별에 따른 노동을 하게끔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서 관리자의 폭력이나 위생 설비와 식수의 오염된 환경으로 최악의 거주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구빈원은 들어갔다 나오면 사회적인 멸시와 낙인은 기본이었으므로 가급적이면 구걸이나 노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만큼 치욕적이었다. 구빈원의 상황을 보면 현재와 매우 다르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 지금이야 복지 시스템이 웬만한 선진국은 체계가 구비되어 있지만, 당시 선진국이었던 영국조차도 복지는 커녕 가난한 이들을 게으르다고 천시하는 시각으로 법을 만들었을 만큼 시설과 위생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 근대에도 아직 완전한 평등을 표방하지 않았던 상황과 동시에 당시 영국인이 강조하고 있는 관념이 가난한 사람들의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 인간에게 단순히 해로운 물질인가?

 술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살펴 보면 지금은 음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사로 인한 행패와 폭력,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야기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상해 사고의 문제로 당연히 좋지 않게 생각한다. 근대에서는 펍과 같은 주점에서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고된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찾아왔고 술을 마시는 행위가 일반적인 상황이었는데 이는 현재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히는 일을 이 책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나에게 이러한 여자들의 사례에 대해 당연히 좋지 않은 감정으로 이 책을 보았으며 그렇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대체 왜 술을 마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은 상황으로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이것이 그녀들이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행위로써 불공평하고 고된 환경의 노동이나 슬프거나 분노에 차오른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그러한 행위가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어 근대에서 술은 민중의 응어리가 담긴, 그야말로 민중의 음료라고 느끼게 되었다.

-이젠 ‘피해자’, ‘타락한 여자’가 아닌 ‘인간’으로 기억된 그녀들의 삶

 사실 영국하면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국가이자 세계 최대의 식민지를 보유한 국가로 일명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게 된 시기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 시대였고 영국의 최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최고의 가도를 달리고 있던 영국이라는 국가의 속을 들여다 보면 잭 더 리퍼의 살인 사건과 같이 흉악한 범죄와 산업혁명으로 인한 악화된 도시의 환경,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책의 희생자들은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고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비난의 목소리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생활과 관계를 갈구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그 시대에 요구하는 성과 인간의 모습이 아닌 시대적으로 일탈을 즐기다 짧고 굵은 삶을 마무리하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당시의 언론이 바라보았던 피해자, 매춘부, 타락한 여자로 살아간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하나의 인간이자, 하나의 여자로서의 삶을 표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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