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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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채식주의자인가?
도서명
저자/역자
한강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2-03-28
독서시작일
2023년 12월 01일
독서종료일
2023년 12월 02일

서평내용

한국 사회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강조하며 착한 아이로 살아가는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았다. 어쩌면 ‘평범한 삶’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5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는 급격한 사회 변동이 있었으리라. 그러한 끝없는 불안한 삶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감정을 죽인 채로 무난하게 먹고사는 일이 최선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나 자신까지 죽여가면서.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모든 것이 평범하기 그지없던 영혜가 어느 날 갑자기 꾼 꿈으로 인해 채식을 시작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가족 간의 갈등과 변화를 나타내는 작품이다. 영혜는 어릴 적부터 평범한 여성으로의 삶을 살았다. 평범한 외모, 무난한 성격, 아버지와 남편에게 순종적인 ‘착한’ 여자. 그러던 영혜가 돌연 채식을 시작하자 평범한 일상은 깨진다. 그녀가 채식을 시작하자 모든 이들에게 그녀는 평범한 여자가 아닌 특별한, 특이한 여자가 되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서두는 평범했던 주인공이 채식을 함으로써 달라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채식을 함으로써 처음으로 세상과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 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영혜는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육식은 잔혹하고도 야만적인 모습이다. 핏덩어리가 덮쳐오는 공포와 폭력성. 한 번의 꿈으로 영혜는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꿈의 육식의 잔혹함과 폭력성은 영혜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꿈은 평범했던 영혜의 삶에 반란을 일으키는 증폭제가 되었다. 이제 영혜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 육식을 비롯한 육식적인 행위까지도.

폭력은 육식과도 같다. 육식의 과정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죽이는 행위에서 시작되며, 이 과정 속 폭력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우리가 흔하게 먹는 치킨도 수많은 닭들의 죽음이 뒤에 있다. 닭을 키우는 과정에서부터 생산성이 없는 수평아리들은 죽어 폐기된다. 남은 암평아리들이 자라면 양계장에서 알만 낳으며 살아가며 죽음을 기다리거나 혹은 치킨이 되기 위해 죽음을 바친다. 이들의 죽음은 오로지 강자인 인간을 위해서, 잔혹한 폭력으로 이루어진다. 잔혹하고도 폭력적인 육식과정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행위에 무감각해져있어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무시하고, 합리화하며 고기를 먹는다. 이러한 합리화 과정은 사람들이 폭력적인 사회를 평범하게 인식하게 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길러진 사람들은 사회의 통념을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이어나간다.

이 작품 속 육식의 의미는 순종적이고 자유의지가 없는 삶, 그리고 그런 과정 속 사회의 폭력성과 잔혹을 뜻한다. 현대 사회는 영혜에게 순종을 요구했고, 사람들은 물리적인 행위와 시선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폭력적인 삶을 평범한 것으로 생각하고 30년 넘게 살아온 영혜는 꿈을 통해 인식하고 벗어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영혜는 채식을 택했다. 영혜의 채식은 폭력과 반대되는 평화와 자유였기에, 채식주의자로의 선언이 그녀에게 엄청난 물리적 폭력을 가져왔지만 굴하지 않는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도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영혜는 자신의 가슴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누구도 해칠 수 없기에 젖가슴이 좋다고 덧붙인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영혜가 손, 발, 이빨, 새치 혀, 심지어 시선까지, 영혜는 지금껏 이 모든 것에게 위협받고 죽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와 남편이 휘두른 폭력들, 평범한 일상에 어긋나면 그녀를 향해 보여 지던 사람들의 새치 혀, 그리고 그동안 ‘착한’ 딸이자 아내, 여자로 자라게 만든 시선들.

이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부모들은 착한 아이이자 조용한 아이로 살기를 강요한다. 부모들은 옆집 아이와 비교를 하고 갖은 말과 시선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 아이들에게 폭력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닌, 비물리적인 형태로 쌓여간다. 영혜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껏 이 고통 속에서 살았다. 이제 그녀는 평화를 꿈꾼다. 둥근 젖가슴만이 남아있는 채로, 채식을 통해 영원한 평화를.

“저 껍데기 같은 육체 너머, 영혜의 영혼은 어떤 시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는 걸까. 그녀는 꼿꼿하게 물구나무 서 있던 영혜의 모습을 떠올린다. 영혜는 그곳이 콘크리트 바닥이 아니라 숲어디쯤이라고 생각했을까. 영혜의 몸에서 검질긴 줄기가 돋고, 흰 뿌리가 손에서 뻗어나와 검은
흙을 움켜쥐었을까. 다리는 허공으로, 손은 땅속의 핵으로 뻗어나갔을까. (중략)”

현대 사회에서 채식주의자로 살기는 너무나 버거운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끝없는 사회의 시선과 새치 혀들, 그 과정의 폭력에 맞서야 한다. 채식을 추구하던 영혜는 그동안 몸속에 박힌 육식을 지울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식물이 된다. 영혜에게 있어 인간의 삶은 억압과 폭력의 허물일 뿐이었다. 그녀는 죽음으로 인해 드디어 진정한 채식에 도달했다.

영혜의 채식은 그녀가 죽음으로써 끝난다. 진정한 채식은 모든 것에서 벗어난 죽음을 통해 이룰 수 있었다. 영혜가 선택한 건 결국 자기 파괴이자 수동적인 여성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는 인터뷰에서 영혜를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거부하며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뿌리 뽑으려 하는 사람, 무서운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며, 그녀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는 것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 속에서는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 밝혔다. 이 인터뷰 속의 작가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게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 자체는 어쩌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고난이 자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필자는 채식주의자를 희망한다. 육식의 잔혹함에서 벗어나 나의 자유와 평화를 가진 채식의 삶을.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그 과정을. 그 과정이 험난할 지라도 자신이 특별해지는 순간, 그 순간이 온다면 \’나\’는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채식주의자인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세상에 특별한 사람으로 표출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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