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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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뿌리 이해하기 - 리와 기를 통한 고찰
저자/역자
오구라 기조
출판사명
모시는사람들
출판년도
2017-12-20
독서시작일
2023년 10월 27일
독서종료일
2023년 11월 01일

서평내용

점차 글로벌화 되어가는 시대에 많은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위해서 혹은 정보 교류와 친목을 위해 외국의 문화와 언어를 배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타 국가에대한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 나라 전반에 깔린 맥락을 읽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공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타인에대한 진정한 이해는 먼저 나 자신에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어떤 객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특정 기준점을 두고 비교를 통하여 상대적 차이를 인지하는 것인데, 그 기준점은 결국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뇌과학적으로 타인에대한 공감과 이해를 담당하는 뉴런 영역과 나 자신의 성찰을 담당하는 영역은 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타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는 것에 앞서 우리 자신 즉,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무의식적으로 한국인을 지배하는 맥락에 대해 깊게 이해해야 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한국인인데 한국인에대해 모르겠는가?” 저 또한 그런 생각을 가졌었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를 수 있다 생각합니다. 가끔 우리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내가 평소에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놀란 경험이 있거나 문득 나의 낯선 모습을 인식하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지하는 한국 사회와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는 다를 것입니다. 실제로 서울대 철학과에서 8년간 수학한 교토대 교수가 쓴 이 책을 보고 저는 한국사회를 신선한 시각으로 새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저자는 한국 사회가 아직도 유교 ‘주자학’의 영향을 강력히 받고 있다 말합니다. 주자학의 핵심은 ‘리와 기’로 이루어진 세계관입니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가장 올바른 이치인 ‘리’ 그리고 ‘리’를 통해 파생된 다양하면서도 탁한 현실의 ‘기’

주자학의 전통이 강한 사회에선 리를 숭상하고 기를 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는 리로 여겨지는 정답을 사회적으로 권장되고 올바른 길로 여겨집니다. 심지어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으로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올바르다’,’착하다’ 라는 칭찬을 듣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공부를 잘하는 것과 도덕적으로 올바른 것은 별개의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칭찬은 이미 도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리는 모든 자연을 이루는 단 하나의 본질이자 도덕이자 숭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은 즉, 리가 아닌 다른 모든 것은 열등하다는 말입니다. 명절 날 우리를 가장 스트레스 받게 하는 말들 또한 리와 기의 관계가 강하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대학은 잘 들어갔느냐”, “취직은 잘 했느냐” , “결혼은 언제 하느냐” 등등 암묵적인 사회적 정답(리)은 한국 사회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안타깝게도 본질인 리는 원리상 한가지 밖에 존재할 수 없기에 리에 도달하지 못한 다수의 패배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Sky 대학에 가지 못하면 언제나 2류 혹은 3류라는 패배감, 누구나 선망하는 A급 직장에 가지 못하면 뒤쳐졌다는 패배감 등 우리 사회는 리를 둘러싼 투쟁의 연속에 쌓여 있다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강하게 공감하는 이유는 온라인 커뮤니티만 들어가 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된 논쟁 거리의 주제들입니다. 수험생 사이트에서는 입결을 둘러싼 대학교 서열 놀이이고 대학생 커뮤니티에서는 직장을 둘러싼 서열 놀이이며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는 연봉과 부동산을 둘러싼 서열 놀이입니다. 해당 논쟁글의 댓글들을 자세히 보면 등급에 따라 상대방을 열등하다 비하하거나 우월감을 느끼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사회적으로 누가 더 올바른지 등급을 매기고 서열을 나누는 리와 기의 문화는 우리의 무의식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리를 둘러싼 투쟁이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순선한 리를 감싸는 탁한 기를 노력하고 수행하여 닦아 낼 수 있다면 누구나 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자학의 사상은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리를 향해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고 한국 사회가 자본주의를 리로 받아들이며 유례 없는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 하는데 큰 힘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리와 기의 상하관계가 지배하는 사회는 이처럼 양날의 검이라 생각합니다. 각 영역마다 단일한 가치가 지배를 하기 때문에 일사분란하게 한 방향으로 집단이 움직일 수 있고 카스트 제도를 운영하는 인도의 체념적 사회와 달리 리를 향한 상승욕구가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발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하지만 역으로 리에서 소외된 많은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피로 그리고 한을 만들어 낸다는 점과 자칫 잘못했다 단일한 가치를 고집하다 잘못된 길로 사회가 외골수화 될 수 있는 점입니다. 과거 실례로 조선 초, 농경사회에 걸맞는 사회제도를 갖췄던 조선시대의 ‘리’는 임진왜란 때, 수많은 지방 의용군을 만들어 내는 등 국가를 지키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농업이 아닌 제조업,상공업이 중요한 시대에 들어서자 과거 가장 선진적이었던 ‘리’는 발전하는 세상에서 조선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 망국의 길에 들어서게 만들었으며 당시 주자학의 비판적인 대안이던 양명학과 실학을 주장하던 많은 사람을 주류 사회의 아웃사이더이자 패배자로 만들었습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불태라 하였습니다. 세계 10대 무역강국이자 한류가 점차 세계로 뻗어가는 시대에 우리가 가진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리와 기의 뿌리의 장단점을 잘 인지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상처들을 보듬고 한단계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바래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학교에서만 배웠던 유학과 주자학의 사상적 배경이 현대 우리들에게도 이토록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를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 책의 일독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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