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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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맞서 싸울 용기,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할 열쇠
도서명
저자/역자
현기영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15-03-25
독서시작일
2023년 11월 08일
독서종료일
2023년 11월 15일

서평내용

책을 읽으며 당시 제주도민의 처절한 심정과 공포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때론 지나치게 사실적인 표현에 놀라고, 때론 담담한 문장들에 가슴 아파하며 책을 읽었다. 순이 삼촌은 현기영 작가의 단편 소설로 제주 4.3사건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군인의 손에 끌려 학교로 가고, 담벼락 끝으로 몰리고, 땅이 붉은 피로 물드는 그런 이야기. 

  “그 죽음은 한 달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순이 삼촌은 1949년에 있었던 마을 소각 때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어, 멀리서 군인이나 순경을 봐도 질겁하고 지레 피하던 신경증세를 앓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던 순이 삼촌이었기에, 그녀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세월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다가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이 삼촌을 보고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제주 4.3 사건뿐 만 아니라 각종 전쟁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과 같이 개인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 있는 일을 몸소 겪은 사람들은 그런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혹은 경험하기 이전의 자신과 동일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극한의 억울하고 잔인한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과연 살아간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순이 삼촌이었다면 그 일이 있었던 이후의 나날들을 멀쩡히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러지 못하였을 것 같다. 나만이 겪은 아픔이 아니기에 주변에 하소연하기도 어렵고, 그날의 일은 모두에게 힘든 일이었을 것이므로 감히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남들은 그저 멀쩡히 잘 잊고 지내는 일을 괜히 나 혼자 다시금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일까 봐. 순이 삼촌을 보며, 우리 주변에 멀쩡히 살아 숨 쉬는 것 같아 보이는 이들도 어쩌면 더 깊은 물속으로 빠지기 위한 오랜 숨 참기를 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그 당시 군인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인들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존재이다. 특히 전시 상황에서는 독단적인 판단에 기반한 돌발행동을 할 경우 위험할 수 있으므로 더더욱 상관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군인도 아이들과 노인들까지 사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식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은 왜 누가 봐도 공비가 아닌 사람들, 즉 아이들이나 노인들에게도 총구를 겨누었을까? 그들이 명령대로 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를 \’권위에 맞서 싸우기 어려운 현실\’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신보다 높은 상급자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은 선생 역할을 맡으며 희생자 역할을 맡은 학습자가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 실험에서 주최자 즉 권위자는 흰색 가운을 입고, 무언가 잘못이 생길 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피험자들은 전기 충격의 강도를 높이는 데 별로 망설이지 않았고, 학습자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마지막 단계까지 전기 충격을 가하였다. 그들은 단지 유능하게 일을 수행하는 것에만 신경 쓸 뿐, 도덕적 사안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다. 이 실험 내용을 보았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사람의 요구에 불응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즉, 군인들도 자신들은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지당하며, 감히 상관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쾌락에 기초한 단순한 사고가 아닌, 성찰을 바탕으로 한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일을 아무런 판단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타당하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고, 사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그 의견을 모아 상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니는 것이야 말로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목소리는 힘이 없을지도 몰라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합치면 분명 내가 속해있는 집단, 나아가 사회를 바꿀 힘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위로해주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나에게 닥칠지 모르는 아픔을 방어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권위에 맞서 싸울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곤란에 처했을 때 다른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꺼이 싸워줄 것이라는 믿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완전하고 건전한 사회 시스템이 구축된다.

  혹시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사회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아무런 비판과 여과 없이 내 주변의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어쩔 수 없다\’는 문장 하에 나의 용기와 행동을 가둬두고 있지는 않은가? 현대인에게는 더불어 살아가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내가 행해야할 것은 무엇이고, 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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