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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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현실적인 이야기에서 느끼는 가장 현실적인 감정
저자/역자
조예은
출판사명
한겨레출판사
출판년도
2022-08-17
독서시작일
2023년 07월 14일
독서종료일
2023년 07월 22일

서평내용

\”제가 죽으면요, 그러니까 제물로 바쳐지면 마지막 소원 하나는 들어줘요. 심장까지 주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수안이에게 제 핸드폰으로 메시지 하나만 보내주세요. 한 통 보내긴 했는데 영 짧은 거 같아서. 널 등쳐먹어서 미안해. 넌 대부분 한심하고 가끔은 사랑스럽지만 잘 살 거라고요.\”

\”싫어요. 종말의 신은 그런 멋 없는 부탁은 들어주지 않는답니다.\”

\”씨발.\”

내가 조예은 작가의 책을 읽은 일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작년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시작으로 그의 글을 읽기 시작했고, 요즘의 여성 작가들처럼 잔잔한 문체에 다이나믹한 사건과 복잡한 감정이 녹아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조예은 작가는 아주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쓴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누구보다 현실적인 감정을 담는다. 〈고기와 석류〉에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한 괴물이 등장하고, 〈가장 작은 신〉은 ‘먼지의 신’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세계이며, 〈나쁜 꿈과 함께〉에는 인간의 공포와 불안의 기운을 먹고 사는 몽마가 주인공이다. 실로 말도 안 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를 그려나가는 작가는 그러한 ‘비현실적인 세계’보다는 ‘현실적인 인간들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비현실적인 세계에 당황하면서도 결코 인간적인 면모를 잃지 않는다. 세계가 무너져내리고, 나의 목숨을 더 이상 부지할 수 없을 순간에도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생각한다. 내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내 옆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반복적으로 말하는 ‘현실적인 감정’은 사랑과 유사한 것들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삶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감정 말이다. 희생, 연민, 동정 같은 것들. 이런 감정들은 결국은 애정으로 귀결된다. 누군가를, 어떤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게 된다. 내가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으로 행하게 된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은 위대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조예은 작가는 사랑을 무엇보다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풀어나간다. 괴물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람, 죽음을 코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 악행을 저지르는 자신의 운명을 무시한 채 누군가를 동정하는 귀신이 작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조금은 우울함을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건강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절대적인 사랑이며, 인생에서 필수적인 요소임을 일깨워준다. 이런 우울한 글을 읽으면서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결국 사랑만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길 수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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