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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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감정과 더불어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편지
저자/역자
정용욱
출판사명
민음사
출판년도
2021-02-25
독서시작일
2023년 05월 02일
독서종료일
2023년 05월 11일

서평내용

나에게 편지란?

 이 책은 제목을 보자마자 관심이 갔던 책이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 부모님께 받은 편지, 어렸을 때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 등 22살까지 받은 편지들을 모두 다 작은 보관함에 모아두고 있다. 편지라는 것이 그냥 종이에 적힌 글씨일 뿐이고 물질적인 것, 돈이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종종 편지를 모으는 것을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편지를 모으는 이유는 별 거 없다.

 그냥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마음으로 편지를 줬었구나, 이런 부분이 좋았고 서운했었구나, 그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때의 나는 이런 사람이었고 그때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바라봤구나.’ 등의 마음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에게 편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경험을 바라보고 그때의 나는 어떠했는지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물건이기도 하다. 즉, 고작 글씨일 뿐이지만, 내가 살아온 역사, 나의 역사에 있어서는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가 편지를 선택한 이유와 글의 방향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이라는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원형을 이루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45년 8월 15일부터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수립되는 1948년 8, 9월까지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데, 편지라는 단서를 가지고 책을 구성해나갔다. 필자는 “그 시기 역사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당대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사태의 전개를 매개하던 사건들의 실체는 무엇이었고, 그 시기 한국인들이 이를 어떻게 수용 또는 저항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역할과 행위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점령기에 오간 편지들을 활용해 당시 한국인들이 해방과 점령을 어떻게 보았고, 또 어떻게 그에 대응했는지 살펴보려고 했다. 필자는 편지들이 특별히 영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당대인들이 그들 자신의 표현으로 자신보다 영향력이 큰 목소리나 그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향해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시선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아마 편지에는 자기도 모르게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념과 인식이 은연중에 잘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문서들보다 시대적인 상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그 시대를 당대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한 사건을 두고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 관점, 목소리 등을 알 수 있다는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다른 단서 및 문서가 많았음에도 편지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편지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다른 자료에 비해서 훨씬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고 사료 비판이 더욱 더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편지를 해석할 때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의 마음과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 편지를 바라볼 때의 느껴지는 마음이 다르기도 하고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추측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필자는 “편지에는 개인의 심성과 사건이 결합되어 나타난다.”라고 말하며 편지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개인 자신의 의미와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서사적 특징을 가진다고 말했다. 즉, 그 의미와 가치는 편지를 작성했던 본인만 아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과 최대한 가깝게 추측해야 할 것이고 함부로 예측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에 편지라는 자료가 한계성이 꽤나 뚜렷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필자는 편지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우리에게 표현하고자 했는지, 편지의 내용을 당대의 역사적 상황과 어떻게 연결하였고, 그 사람의 심정을 어떻게 공감하고 이해했는지에 대해 기대가 들기도 했다.

 이에 나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편지의 특징, 성격들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해나갈 것이고, 나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 것인지, 역사로써 편지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작성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편지 :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알 수 있는

 나도 지금 사료 분석하는 수업을 듣고 있지만, 그 수업을 통해 작성한 주체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그 시대에 대한 관념 등의 차이를 알 수 있었고 당시 시대적 상황,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각각 부산에 사는 일본인이 서울에 사는 다른 일본인에게 보낸 것이었다. 미군의 서신 검열에 걸렸지만, 어떻게 하면 많은 현금을 소지하고 귀국할 수 있는지 그 수단과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 편지들을 통해서 밀항이 꽤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는 것도 알 수 있었고, 일본인들이 어떻게 현금화를 했고, 생활고 연명을 위한 자산 담보는 어떻게 했는지, 일본인 여성들이 일본으로 갈 때 소지품 검사에서 헌병에게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귀중품은 어떻게 안전하게 숨겼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편지의 내용이 생생했기에 그들이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했고, 생활고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상상이 갔다. 특히 일본인 여성들이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때 압수당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지에 대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에 편지가 역사적 사료로써 생각보다 그 상황과 감정을 더 잘 담고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료에 비해서 이미지적으로 많은 상상력을 하게 해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편지 : 역사적 상황과 연결하면

 한편 흥미로웠던 부분도 존재했었는데, 바로 재일 조선인과 관련된 편지였다. 오사카시 히가시구에 주소를 둔 한 관리가 미군이 일본에 진주한 뒤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현재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내용으로 하는 편지를 맥아더 사령부에 보냈다. 그는 그 편지에서 현재의 식량 부족 원인이 조선인에게 있다고 주장했고, 100만 명의 조선인을 돌려보내면 식량 부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고 범죄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편지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신체적, 생리적 차이를 패전 직후 일본의 식량 부족과 조선인들의 암시장 관여 원인으로 뽑았는데, 이에 필자는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이 편지 구절을 읽고 그냥 ‘그런 상황이 있었구나.’라고 상황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필자는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고 말하며 그 상황에 대해서 몰입하고 공감한 것 같았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편지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필자가 신기하고 본받고 싶었다. 이러한 필자의 태도를 보고 물론 내가 둔한 것도 있겠지만 나도 역사적 공감 능력과 사고력을 책을 많이 읽으면서 키워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 필자는 그렇게 밥통이 큰 조선인들을 왜 대규모로 강제 동원해 일본의 광산과 공장에서 배를 곯게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처럼 그냥 조선인에게 좋지 않은 대우를 했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필자는 역사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 편지를 이해하려 했고, 그것에 맞게 해석하여 일본인이 일본 패전 직후의 경제적 곤란과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과거 식민지들에게 전가하려 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것으로 봤을 때, 편지 내용을 당대의 역사적 상황과 연결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상황에 조금 더 집중하고 공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적 분위기 또한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이후 어느 순간부터 암시장에서 경제를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조선인, 중국인, 대만인 등 ‘제3국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당대 사람들의 비난의 시선의 변화도 알 수 있었다.

편지 : 문장부호 하나만으로도 감정을 읽을 수 있는

 1947년 8월 말 늦더위가 한창인 때 서울 인사동에 사는 한 여성이 미국 대통령 특사로 남한을 방문한 앨버트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진정서 한 통을 보냈다. 이 여성은 자신의 절박함을 편지 서두와 중간에서 웨드마이어 장군을 부를 때 연이어 찍은 세 개의 느낌표로 대신했다. “친애하는 각하!!!”라고 표현을 했는데, 나는 이 문장을 보고 간절함과 그녀의 강단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당시 시대적 상황만 생각하더라도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이런 편지를 기명으로 보낼 수 없었다. 여운형조차 한 달여 전 수도경찰청장으로부터 공공연하게 도는 암살 협박을 전해 듣고 며칠 뒤 피살된 판국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지를 작성한 여성은 주소도 밝히고 이름도 밝히고 심지어 이름 아래 도장까지 찍어 자신의 신원을 증명했다. 이러한 그녀의 편지를 통해 해방 이후 미군정하 남한 사회의 변화와 최근 동정을 알 수 있었고, 그녀가 느끼고 있는 고통과 그녀가 추구하는 해결 방향도 알 수 있었다.

 즉, 그녀가 ‘얼마나 간절하고 현실이 암울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바라는 해결 방향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제시한 것을 보면서 그녀의 강단과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문장 부호의 표현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감정이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38선 바로 아래 개성에 사는 백양기라는 청년이 1947년 9월 1일 웨드마이어 장군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는데, 미농지 두 장에다 청년답게 활발한 필체로 써 내려갔다. 그 편지에는 “경애하는 웨데마이어 장군 각하!”를 몇 번씩 되풀이하면서 그에 대한 감사와 조선인들이 그에게 갖는 기대를 피력했는데, 여기에서도 문장 부호나 표현만으로도 어떤 것을 강조하고 있고, 그 사람의 의도나 생각, 감정이 무엇인지 강경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역사에서 편지가 가지는 의미 & 글을 마무리하며

 이처럼 필자는 편지를 역사적 상황과 연결시키고 시대적인 측면에서 이해하여 보통 사람뿐만 아니라 당시 정치인들의 인식과 통념, 사회적 여론과 소문, 개인의 감정, 충돌하는 현실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로 드러내고자 했다. 모든 역사가 과정이 혼란스럽겠지만, 유독 과정이 혼란스럽다고 생각되는 광복 이후부터 남과 북이 각각 정부를 수립하기까지의 점령기라는 시기를 편지를 통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관찰하고 살펴보니 확실히 좀 더 생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과거 그 사람들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현재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도 새로웠던 것 같다.

 편지는 단순한 글이 아니다. 단순히 사람과 사이에 말을 전달해주는 종이가 아니다. 편지는 앞에서 계속 말했듯이 그 시대 사람들의 시선을 알 수 있게 해주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상황 및 사실에 대해서 확실하게 입증을 해주는 증거의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편지를 통해 다른 사료의 잘못된 점을 짚어주기도 한다. 또한, 편지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 다뤄지는 주제 등을 통해서 그 시대 때 핵심적인 문제 상황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편지를 통해 인물이 인물을, 인물이 그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편지는 사람과 사람이 사적인 내용의 일을 주고 받는, 사적인 감정을 주고 받는 글이라고 일차원적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편지가 역사적 사료로써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료보다 개인의 감정, 시대적 상황을 잘 드러내는 자료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깨달았으며, 역사에서 그 어떤 문헌 자료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중요한 해석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편지를 얕게 본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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