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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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마음은 건너편쯤
저자/역자
김애란
출판사명
문학동네
출판년도
2017-06-28
독서시작일
2021년 06월 01일
독서종료일
2021년 06월 01일

서평내용

바깥은 여름인데 그 안에 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참 춥고 아리다. 외로운 이야기를 하나씩 읽으면서 만약 글이 사람이라면 한 번씩 안아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중 <건너편>은 실제로 추운 겨울 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곳곳에서 웃음이 번지는 날로 생각했는데, 앞으로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조금은 씁쓸한 심정으로 거리를 둘러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도화나 이수가 있을지 모를 거리를.

​<건너편>은 오래된 연인의 권태를 다룬 이야기다. 책에서 이수가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가 금방 채널을 돌리는 도화의 장면이 나온다. ‘전파가 도화의 몸을 얼룩덜룩 물들였다’는 표현이 있는데, 도화를 얼룩지게 만드는 요란한 홈쇼핑과 대출 광고는 현재 소리만 요란할 뿐 가난한 둘의 관계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과거의 도화와 이수 머리 위에서 아른대던 수족관의 물그림자와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보던 도화와 이수. 이 대비되는 두 장면이 물고기가 헤엄치는 진부한 모습도 함께이기에 아름답게 볼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시들어버린 지금의 연인 관계를 잘 보여 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둘의 권태는 언제부터였을까. 도화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도화의 방식으로 수건을 개는 이수. 이수가 취업 기념 텔레비전을 샀을 때 내 카드로 샀으니 걱정 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대사로 미루어보아 이수는 도화의 돈을 평소에도 당연한 듯이 썼을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기념일에 식당을 예약하지 않고, 입을 옷이 없다며 만날 투덜대는 사람의 무신경함은 지난 8년 동안 또 다른 한 사람을 지치게 만들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수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국가가 보증하는 시민인 도화에게 점점 거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계속 시험에 떨어지고 한 자리에 정체되어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성장하는 도화를, 벌어져가는 둘의 간극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다려주는 도화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은근한 열등감, 그렇기에 자꾸 쌓여가는 비밀들. 25만 원짜리 식사의 시발점은 도화에 대한 이수의 죄책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둘이 마냥 행복했을 때는 없었을까. 시금치 및 나물 반찬을 먹을 때 둘은 제철 음식을 먹으니 속이 편하다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인생에도 제철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가장 자신감이 있을 때, ‘나’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가 제철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에도 제철이 있을까?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둘은 서로의 힘듦을 나눴다. 각자의 인생에서 외로움을 덜어내고 온기를 불어넣어준 사이이기에 서로가 소중하겠지만 서로 너무 힘든 시기에 서로를 만났다. 그게 8년 동안 이어져오면서 둘의 ‘제철’을 놓친 건 아닐까. 더 이상 서로가 서로이기만 해도 괜찮은 때가 아닌 것이다. 제목 <건너편>처럼 둘이 함께 있어도 서로의 마음은 건너편쯤, 너무 멀리 있어 서로 닿지 못 하는 정도까지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수를 보면서 답답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를 많이 투영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나는 과연 오랫동안 하나의 길을 걸을 수 있나. 그것도 일종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 꾸준히 도전하는 일은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동백꽃은 한겨울에도 홀로 꽃을 피우니까, 이수가 늦다 좌절 말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노력했으면 한다.

또 읽으면서 도화는 참 단단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견고한 마음을 가지고 시험을 준비해서 합격한 도화가 다시 빛나는 눈을 가지고 살길. 가끔은 이수를 그리워하면서도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길. 노력해야만 낭만적일 수 있는 현실에서 혼자서도 따뜻한 봄을 맞이하길. 도화를 응원하고 싶다.

책 밖 현실에서도 수많은 이수와 도화가 존재할 것이다. 모든 이수가 남들이 본인보다 빠르다고 해서 조바심 내지 않길 바라며, 모든 도화가 본인을 지치게 만드는 관계는 자책하지 말고 끊을 수 있길 바란다. 세상에 영원한 관계는 없다. 하지만 소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우리가 느꼈던 모든 감정들은 머릿속에서 영원하다. 그러한 기억들을 간직할 수 있기에 우리는 용기를 얻고 삶에 있어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도화와 이수 역시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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