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
동아인 우수서평
>
I CAN SEE
저자/역자
Sarsmago, Jose
출판사명
해냄 1999
출판년도
1999
독서시작일
2020년 12월 18일
독서종료일
2020년 12월 18일

서평내용

I CAN SEE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속 사람들은 단지 눈이 멀었을 뿐이지만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것을 잃는다. 작품은 보다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달하고 있다. 당장에 손아귀에 있는 차 키나 집 열쇠 같은 실물에서부터 볼 권리의 박탈로 인한 생존권 침해까지, 인간이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잃는 것은 작은 불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백색 실명에 빠진 자들은 내가 가진 부를 볼 수도 없고 나의 지위를 보여줄 수도 없다. 자본주의가 그어놓은 선이 지워지면서 다 함께 같은 출발선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쩌면 덕분에 유토피아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들도 나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차원이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감시를 잃어버린 인간은 사회화 이전으로 돌아간다. 오로지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단순히 자신이 가진 재산과 지위뿐만 아니라 윤리와 인간의 존엄성까지 모두 잊은 듯이 군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의 인권과 윤리, 도덕은 사실상 감시가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겨우 유지되어왔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세상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기 그지없다.

감시의 부재로 인한 인간 본능의 폭발은 인간이 감시를 그만큼 두려워해 왔다는 데에 대한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는 전염병의 공포에 휩싸여있고 전염이라는 특성에 집중해 한국은 감염자 동선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세세하고 상세하게 제공되는 동선 정보는 N차 감염자 확보와 경각심 재고를 이루어내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막역한 공포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남들이 나의 행동거지를 알고, 나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감염자가 되는 순간 판옵티콘에 수용되는 것처럼 느끼도록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이며 이러한 방식이 전염병 확산에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을 모두가 알면서도, 해당 질병보다 동선이 까발려지는 그 날이 더 두렵다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 불안을 딛고 서 있어야만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너와 우리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내가 감염자가 되어 동선이 밝혀졌을 때 무수한 눈길들로부터 받을 질타를 걱정해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겠다는 결론을 낸다. 클럽이나 교회에서 감염된 사람들을 향한 손가락질을 보고서야 그곳을 기피한다. 감시의 사회화 아래에서야 인간은 나와 다른 인간을 볼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감시는 자연 그대로의 인간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오지만 사회 속의 인간에게는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전염병 감염자 동선이 낱낱이 밝혀져도 대부분의 사람이 큰 반발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보지만 누군가는 볼 수 없는, 판옵티콘은 여전히 감옥이다. 현실의 사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네가 본다면 나도 봐야 하고, 내가 볼 수 없다면 너도 볼 수 없어야 한다. 그 예가 바로 현시대의 연예인들이다. 그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감시당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 인간들을 모두 볼 수 없다. 그래서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악플에 괴로워하며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일방적인 감시는 인간을 사회화가 아니라 피폐하게 만든다. 전염병으로 인한 동선 공개가 연예인들이 느끼는 공포의 맛보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감시의 부재로 인한 인간 본능의 원초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품 안 유일한 감시자의 존재를 통해 인간적인 희망을 지켜낸다. 인간은 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많은 것을 잃는다. 또 나만 볼 수 없고 남들은 볼 수 있을 때 무너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감시의 눈은 인간 개인 그 안에 분명히 살아있는 것임을 <눈먼 자들의 도시>보여준다.

전체 메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