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인 우수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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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 없는 사람들의 어설픈 정의감
저자/역자
도선우,
출판사명
나무옆의자 2017
출판년도
2017
독서시작일
2018년 03월 18일
독서종료일
2018년 03월 18일

서평내용

‘어설픈 정의감’이란 무엇인가? 책에서는 어설픈 정의감이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막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통의 적을 쓰러트리는 존재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게 된다. 현실의 연쇄살인을 보면서 사회가 밝혀내지 못하는 사건의 동기를 어느정도 합리적으로 말하는 한 인터넷 유저를 존경하고 저스티스맨이라 부르는 건, 살인범의 행위가 사람들의 어설픈 정의감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악을 처단하는 마치 그 살인이 정의를 위해 어느정도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정의를 실현하고 싶지만 사회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자신의 정의를 완벽하게 실행할 구체적인 비전이나 계획이 없기에 누구도 구할 수 없는 ‘어설픈 정의감’만 남게된다. 그리고 책속에서 그 어설픈 정의는 계속되는 연쇄살인과 현실사회의 무능함으로 더욱 가속화된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저스티스맨이 주장하는 ‘어설픈 정의에 대한 심판’이란 말에 선동되어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악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정당한 살인을 옹호하고 의존하는 행위를 보인다. 작가는 사건의 전개를 통해 정의와 악을 결정하는 기준을 불명확하게 만들고 그 경계선을 파괴함으로써 발생되는 대중들의 행위를 보여준다. 또한 사회정의를 세우는 자들인 정부, 경찰의 능력을 극도로 낮추면서 ‘어설픈 정의’에 대항할 수 없게 만들어 이것이 현실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저스티스맨’은 인터넷에서 탄생한 말이고 인터넷 유저인 누리꾼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누리꾼들이 저스티스맨이 주장하는 말에 선동되는 이유는 단지 어설픈 정의감만이 아닐 것이다. 연쇄살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살인이라는 악을 물리칠 수 없는 사회의 무능함으로 인해 누리꾼들은 스스로 정의와 악을 판단할 기준을 잃어버린다. 그것이 저스티스맨의 말이 경찰보다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판단하며 현실의 세상보다 인터넷 세상을 더 신뢰하는 이유이다. 또한 익명성을 보장하는 인터넷 세계에선 어설픈 정의로 인해 발생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작품 속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어설픈 정의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저스티스맨’이라 불리는 유저 역시 자신의 생각이 누리꾼들에게 선동적이더라도 특별히 책임지지 않는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이기에 자신의 어설픈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를 마음껏 발산한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지금의 인간은 쉽게 잊어버리고 좋아하는 게 전부가 되버린 붕어인간이며,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존재(241p)라고 말한다. 그 말을 과연 모든 사람이 부정할 수 있을까. 실제로 아무렇지 않게 남을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고 그 말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설픈 정의란 단지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욕구실현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열한 악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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