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보다가 우연히 한 책의 소개를 보게 되었다. 줄거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이 책을 보신다면 절대로 맨 뒷장을 먼저 열어보지 마세요.’라는 문장에 결말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기로 하였다.
이 책은 1930년대 초 독일의 한 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한스는 랍비의 손자이자 의사의 아들인,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이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그다지 대접받는 위치는 아니다. 사춘기 나이 대인 한스는 또래보다 생각이 많고 성숙하며 우정에 대한 로망도 있어 본인의 우정 기준에 맞는 동급생을 찾지 못해 친구를 사귀지 않고 혼자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이라는 한 소년이 전학을 온다. 그는 이름에 ‘폰’과 같은 것이 들어가지만 실질적으로 현재 귀족이 아닌 몇몇 학교 친구들과는 달리 진짜 독일 귀족 집안의 아이였다. 한스는 그런 콘라딘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콘라딘의 관심을 끌기 위해 평소와는 다르게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평소 취미로 수집하던 특이한 동전을 가지고 와서 무심한 척 갖고 놀며 보여주기도 한다. 동전에 관심이 있던 콘라딘은 한스와 친해지게 되고, 그 외에도 시나 책, 오페라와 같은 예술이나 철학 분야의 관심사가 비슷해 급속도로 절친이 된다.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그림 같은 묘사와 시를 인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인상 깊었다. 우정이 깊어질수록 독일 귀족과 유대인이라는 신분 차이가 그들 사이에 조금씩 드러나게 되고 한스는 모멸감, 열등감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지만, 대화를 통해 잘 풀어나간다. 그러던 중 나치즘 사상이 크게 독일에 휘몰아치게 되고 나치즘의 엄청난 추종자인 역사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면서 한스는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핍박받게 된다. 또한 콘라딘과도 서먹해지며 다소 멀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부모님의 제안으로 한스는 미국에 있는 친척 집으로 가게 된다. 떠나면서 두 통의 편지를 받게 되는데 한 통은 학교에서 한스를 놀리던 학우의 모욕적인 말이 가득 적힌 편지였고 한 통은 콘라딘의 편지였다. 콘라딘의 편지에는 한스에게 너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독일이 너를 필요로 할 것이라 믿으며 네가 떠나게 된 것이 안타깝지만 자신은 히틀러의 사상에 동의하고 독일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그 후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한스는 변호사라는 좋은 직업을 얻고, 결혼도 했으며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는 성공한 삶을 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허전함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로부터 2차 세계대전 때 산화된 동창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을 위해 기부해달라는 호소문과 함께 인명부가 오는데 한스는 그것을 버리려다 다시 주워 찬찬히 읽어본다. 하지만 H 카테고리는 차마 읽지 못한다. 명단에는 잘 모르던 동창부터 한스가 떠날 때 모욕 섞인 편지를 보냈던 동창까지 많은 동창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큰맘 먹고 펼쳐본 H 카테고리에는 놀라운 이유와 함께 보고 싶지 않았던 그 이름이 쓰여있고 책은 끝나게 된다.
이 책은 한스의 시점으로만 쓰여있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니 콘라딘의 마음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함께 했을 때는 유대인을 싫어하는 부모님과 유대인인 친구와의 우정 사이에서의 갈등이 있었을 테고 한스가 떠난 후의 세월 동안에는 유대인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안타까움, 자신이 생각한 방향이 아닌 엇나가는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스러움 등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런 마음들이 그를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스가 떠난 후의 콘라딘의 삶도 궁금해졌다.
또한 조국인 독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쓰라리다는 한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친구를 늘 생각하는 마음이나 마지막에 드러난 콘라딘의 행보를 보고 나니 책의 첫 문장인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라는 문장과 한스의 우정 이상형이었던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라는 문장이 깊게 와닿았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과 대비되는 신분을 뛰어넘은 두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에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고 이와 별개로 두 소년이 토론하는 장면들에서 던져진 논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서평들과 출판사 홍보 문구가 말하듯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마지막을 먼저 읽거나 결말 스포일러를 보지 않기를 권한다. 또한 책 맨 앞에 있는 두 개의 서평 역시 책을 다 읽은 후 읽으면 더 와닿고 이해가 쉬울 것이다. 찡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시대상이나 이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짧지만 깊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