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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00 a동급생 /d프레드 울만 지음 ;e황보석 옮김
260 a파주 :b열린책들,c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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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 00 a원저자명: Uhlmam, F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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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종류
단행본 국내서
서명
동급생
저자명
발행사항
파주 : 열린책들 2017
형태사항
158 p ; 20 cm
주기사항
원저자명: Uhlmam, F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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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청구기호 : 843.5 울32동
도서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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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청구기호 별치기호 소장위치 대출상태 반납예정일 서비스
등록번호
E1325160
청구기호
843.5 울32동
별치기호
소장위치
북갤러리(한림도서관2층)
대출상태
대출불가 (소장처별 대출 불가)
반납예정일
서비스
등록번호
E1325161
청구기호
843.5 울32동 =2
별치기호
소장위치
부민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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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가능
반납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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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아인 서평

울만, 프레드,
배지혜
2020-12-31
제목을 보았을 때는 단순히 동급생 간의 우정을 그린 소설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소설은 낭만적인 우정을 꿈꾸던 한 유대인 소년과 학교의 새로운 학생인 명망 높은 백작가의 아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유대인 소년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1932년,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 앞에 나열된 단어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소설에서 어떤 흐름으로 소년들의 우정이 전개될 것인지 예상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작가 역시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소설 곳곳에 그와 관련된 묘사들을 배치해놓았다. 수도 베를린의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 하켄크로이츠 표식,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 소설 후반에는 직접적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사상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나와 주인공을 공격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히틀러의 사상을 지지하는 백작가 소년과 주인공은 점점 멀어지게 된다. 결국에 주인공은 안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뒤에 죽은 동창생들의 명부를 통해 자신의 친구, 콘라딘이 아돌프 히틀러의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소설은 끝이 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인격적인 성장,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물론 모두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아돌프 히틀러’라는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인간을 만나 동화된 사람들은 그릇된 이상을 꿈꾸다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되었고, 히틀러를 만나기 전 유대인 소년을 만난 콘라딘이라는 인물은 세상을 바로 잡는 일에 앞장서는 용기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 어떻게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히틀러를 암살할 결심을 세웠던 걸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나는 콘라딘에 독일을 떠나는 한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친애하는 한스, 너는 내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어. 나에게 생각하는 법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의심을 통해 우리 주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법도 가르쳐 주었어.”   이 편지를 한 번 읽었을 때에는 이 마지막 문장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스가 미국에 가기 이틀 전까지 자신이 히틀러의 사상을 따르는 이유에 대해 합리화하기 위해 그 편지를 보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본 순간, 이 편지를 다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변명이라고 생각했던 편지에 다른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친구를 잃기 싫다는 간절함. 궤변을 늘어놓으면서까지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싶었던 콘라딘의 상황. 어쩌면 히틀러에 대한 의심은 오래 전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더라도 콘라딘은 한스가 떠난 뒤 많은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왜 학교에서 한스가 괴롭힘을 당할 때 나서지 못했을까. 유대인 친구를 탐탁치 않아하던 부모님에게 왜 반기를 들 수 없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죄책감이 중첩되어 콘라딘은 히틀러를 암살하겠다는 선택을 한 걸지도 모른다. 만약 그 학교에서 콘라딘이 한스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 때에도 그는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책을 완독하고 나서 특수한 상황에서 펼쳐진 유대인 소년과 독일 명문가 소년 사이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중점을 맞춰 책을 곱씹어보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독자적인 가치관을 형성하여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선택의 순간마다 그 가치관을 기준으로 한 가치 판단을 통해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이때, 이 가치관을 형성하는 구성 요소 중 인생을 살아가며 만난 사람과의 관계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연 콘라딘의 처형 사실을 깨달은 한스가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책의 제일 마지막 장을 읽고 다시 돌아온 소설의 도입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그와의 교류는 끊어졌고,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도 사라졌지만 콘라딘은 한스의 인생에 영원히 남아 한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 매우 다양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런 다양화가 사람들이 관계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관계가 빠르게 소모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며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와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상대에게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간의 입체성을 인정하며 사람을 대한다면 보다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소 특별한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둔 두 소년의 우정을 통해 인간관계를 그려낸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 이후에 남겨진 한스의 인생을 응원하며 서평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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