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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종류
의학동서
서명
피로사회
저자명
발행사항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2.
형태사항
128 p; 20 cm.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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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정보

청구기호 : 104 한44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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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아인 서평

Han, Byung-Chul
김지수
2020-12-07
성과사회에서 살아남기    Ⅰ. 들어가는 말  피로사회는 재독 한인 철학자 한병철이 지은 책으로 출간 당시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으로 저자는 독일에서, 우리나라에서 주목받는 문화비평가로 부상했다. 저자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개인 주체들이 겪고 있는 ‘우울‘과 ‘피로‘라는 심리적인 문제를 시대의 고유한 질병이라고 진단하며, 오늘날 사회에서 발견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인상 깊었던 키워드를 기준으로 글을 정리하고,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려고 한다. 또, 성과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떡할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Ⅱ. 이질성의 소멸   1. ‘규율사회‘와 ‘성과사회‘  저자는 ‘규율사회‘와 ‘성과사회‘ 두 가지의 키워드로 현시대를 설명한다. 저자는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라고 말한다. 또,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의 연장이라는 점에서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 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이는 “능력이 긍정성“이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조지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를 비판한 소설이다. 신분과 그에 따른 할 일이 정해진 소설 속의 사회는 ‘규율사회‘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1984’속 사회가 규율사회를 고집하는 이유는 “여가와 안전이 모두에게 똑같이 향유될 경우, 보통은 빈곤에 의해 마비되어 있던 태반의 사람들이 글을 익히고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는 것을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 ‘규율사회‘에서는 우민화를 통해 계급사회를 공고화하였다.  계급사회에서 벗어난 뒤, 여가와 안전은 모두에게 향유되었다. 전보다 더 풍요로운 삶 속에서 사람들은 계몽하였고, 더 많은 교육수준을 유지하며 더 많이 생산하였다. 이제 ‘귀속‘, 즉 신분이 중요한 시대는 지났다. 모두가 양의 조건을 갖추었기에 내가 얼마나 ‘성취‘했는지가 중요해진다. 성과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성과 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렇기에 성과사회에서는 계급투쟁이나 피지배층과 지배층의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성과사회에서는 ‘타자‘와의 관계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2.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  성과사회에서는 ‘타자‘와의 관계가 사라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던 ‘이질성‘과 ‘타자성‘도 소멸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이질성은 아무런 면역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차이로 대체되었다. 면역학적 차원에서 차이란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이에는 말하자면 격렬한 면역 반응을 촉발하는 가시가 빠져 있다. 타자성 역시 날카로움을 잃고 상투적인 소비주의로 전락한다. 낯선 것은 이국적인 것으로 변질되며, 여행하는 관광객의 향유 대상이 된다. 관광객, 또는 소비자는 더 이상 면역학적 주체가 아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경쟁 사회에서 ‘남들만큼‘ 하는 것은 결국 타자에 의해 내몰리듯 착취하는 건데, 이것도 자기착취로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결국은 본인 스스로 착취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자기착취의 과정에서는 누군가의 강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부와 명예를 ‘충분히‘ 많이 가진 사람도 자기착취를 하고, 소진 증후군으로 고통받는다. 이것은 자기착취가 “무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무력감에서 빠져나오려는 시도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타인이 아닌 자기 스스로 자신을 착취한다는 점에서 ‘자기착취’는 그대로 유효하다.   3. 자본주의의 연장선 _ 소비주의로의 전락    과거의 거래는 ‘사회관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물질은 관계를 대체하였다. 이제 사람들의 거래는 시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장에서 우위는 관계가 아닌 상품의 가격과 품질이 된다. 고용시장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노동력을 사고, 파는 관계라는 개념이 생긴다. 인간관계 또한 물질로 귀착되는 것이다. 또, ‘신용‘이라는 말로 그 사람이 얼마짜리 사람인지 값을 매긴다. ‘목숨은 돈으로 살 수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보험‘으로 생명에도 값을 매긴다.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것조차도 돈으로 사는 시대가 왔다.  성과사회에서는 성과는 계량화되고, 성과 주체는 ‘나‘라는 상품이자, 이를 판매하는 판매자가 된다. ‘스펙‘은 계량된 ‘성과‘이다. 스펙은 ‘나‘라는 상품의 옵션이 된다. 옵션은 곧 돈이 된다. 판매자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더 많은 자본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가치를 지닌 상품을 만든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나’는 ‘상품‘인 동시에 ‘판매자‘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이질성과 타자성이 소멸은 ‘타자‘라는 범주를 희박하게 만들고, ‘적‘을 없앤다. 적 또한 나의 소비 대상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경쟁의 대상은 나뿐만이다. 내가 노력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과 주체는 더는 할 수 없을 때까지 자신을 착취한다. 성과를 위해 약물을 불사하는 도핑 주체도 증가한다. 나만 잘하면, 나만 노력하면, 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고 팔 수도 있으니까.     Ⅲ. 자유   1. 자유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 인간에게 풍요와 자유를 주지만, 종국에는 자기를 착취하는 폭력으로 나타난다.” 저자 한병철이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를 갈망하지만,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인간의 부조리한 이중성을 꼬집는다. 견고한 신분제와 종교적 교리가 지배하던 중세시대에서 인간은 안정감을 느꼈다. 그러나 중세사회가 붕괴하고 근대 자본주의가 확산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계급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과거보다 경제적 자유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만큼 외로워졌고, 다시금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길 바라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개인이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사회라는 톱니바퀴의 작은 부품이 되어 자유로운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자동인형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동인형으로 전락해버린 개인은 ‘피로사회’의 성과주체와 자유를 계기로 자아를 수단화한다는 점에서 맞닿아있다.   2.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세사회 전통적 유대로부터 해방된 것은 독립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개인에게 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고독과 고립을 느끼게 했고, 회의와 불안으로 그를 가득 채웠으며, 결국 그를 새로운 복종과 강박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독과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할 때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권위에 복종하거나, 이미 용인된 행동양식에 강박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우리의 개체적 자아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이 부분은 성과 주체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한다. 책에 의하면 이질성과 타자성이 소멸한 것은 타자의 존재로 인한 고독과 고립 그리고 회의와 불안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낯섦’을 벗어나기 위해 타자를 없애고, 나도 없애 타자와 내 삶의 경계를 허물었다. 자아를 제물로 만든 소속감은 성과사회에서 ‘긍정성의 폭력’의 원천이 되었다. <피로사회>에서는 긍정성의 폭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긍정성의 폭력이 깃드는 곳은 부정이 없는 동질적인 것의 공간,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양극화가 일어나지 않는 공간이다.”   3. 긍정성의 폭력과 자동인형화  “개인은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둔다. 그리고 문화적 유형이 그에게 제시한 성격을 그대로 수용한다. 따라서 그는 모든 타인과 똑같아지고, 타인이 그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똑같아진다. 나와 외부 세계의 차이는 사라지고, 그와 더불어 외로움과 무력함을 두려워하는 의식도 사라진다. 이 메커니즘은 일부 동물들에게 볼 수 있는 보호색에 견줄 수 있다. 이런 동물들은 주위 환경과 너무 비슷해 보여 거의 구별할 수 없다. 자신의 개별적 자아를 포기하고 자동인형이 되는 사람은 주위의 수백만 명의 다른 자동인형과 똑같기 때문에 더 이상 고독과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그것은 자아의 상실이다.”  위의 구절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자유로부터 도피한 개인이 ‘자동인형’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알려준다. 필자는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자동인형’과 ‘성과 주체’는 같은 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둘 다 ‘타자의 부정성’이 사라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타자의 부정성이 없어지면 같은 것의 창궐이 초래된다. 같은 것의 창궐은 스스로를 성장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어떤 특정한 지점을 넘어서면 생산은 더 이상 생산적이지 않고 파괴적이며, 정보는 더 이상 정보를 주지 않고 왜곡하며, 소통은 더 이상 소통적이 아니라 누적적”이다. 결국,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는 시스템은 나를 파괴한다. “같은 것에 의존하여 사는 자는 같은 것으로 인해 죽는다”라는 보드리야르의 말대로, 같은 것은 우리의 자아를 좀먹는다.   4. 적극적 자유   “… 지배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 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관계적 상태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한병철은 위와 같이 말하였다.자유는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앗아간다. 사람들은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을 착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어진 자유 속에서 어떡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인간의 내재한 자아를 최대한으로 실현하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이 되는 ‘적극적 자유’를 실천할 것을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한편, 한병철은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으로 지탱되고 있다면, 개개인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아래 ‘무위의 부정성’에서 피로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저자의 대안을 설명하고 있다.     Ⅳ. 무위 1. 무위의 부정성  무위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거나 이룬 것이 없는 것이다. 무위의 부정성은 하지 않는 데에서 나온다. 무위의 부정성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긍정적 힘이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부정적 힘이다. 무위는 ‘근본적 피로’에서 오는 극도로 능동적인 과정이다. 즉, 무위는 사물에 의존하지 않고, 즉각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사색적 삶은 무위의 부정성에서 나온다. 니체는 이를 위해서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한병철은 다음과 같은 니체의 말을 인용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2. 분노의 힘 _ 멈춤의 필요성  “사회의 긍정성이 증가하면서 불안이나 슬픔처럼 부정성에 바탕을 둔 감정, 즉 부정적 감정도 약화된다.”  “전반적인 가속화와 활동 과잉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분노하는 법도 잊어가고 있다. … 분노는 현재에 대해 총체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분노의 전제는 현재 속에서 중단하며 잠시 멈춰선다는 것이다. … 분노는 어떤 상황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 분노는 전체를 부정한다. 분노는 예외적 상태이다. … ”  한병철은 위와 같이 분노의 긍정적인 측면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오늘날은 분노 대신 어떤 심대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는 짜증과 신경질만이 점점 더 확산되어 간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우리는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분노하기 위해서는 멈출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무한궤도를 달리는 경주마인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언제 쉴지, 언제 멈출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더 잘 달릴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이 달릴 것을 요구한다. 더는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될 때까지 채찍질한다. 그리고, 쓰러진 말에게 가서 더는 달리지 못함을 자책한다. 너무 힘들어서 멈추는 것조차 죄가 되는 것이다.     Ⅴ. 성과사회에서 살아남기  필자는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우리는 ‘잘’ 살려고 할까? 왜 우리는 우리의 삶에도 ‘잘’이라는 값을 매기고 평가하는 것일까. 내가 걸어온 길은 내가 보고 체험한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데, 왜 잘 산 삶과, 잘 살지 않은 삶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것일까. 이것부터가 나의 내면에 ‘성과’라는 압박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피로사회>에서 한병철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지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사는 건 ‘옳지 않다’라고 말하거나, 다른 철학자의 글을 인용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라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자기착취로 이어짐을 저자는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태 사랑과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다. 내가 더 잘되길 바란다는 명목하에 더 많은 성과를 내도록 압박했다. 힘들 때가 찾아오면 힘들어서는 안 된다고 자책했다. 나는 이제 나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이 힘들어서 쉬고 있는 사람에게 힘들면 안 된다고 욕을 할 수 있을까. 그저 위로해주고, 들어주고, 편히 쉬라고 하지 않을까. 더는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한다. 힘든 나 자신을 인정하고 힘들 때는 쉴 수 있게 해 주려고 한다.  성과사회에서 ‘잘’ 사는 방법은 최대한 성취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내 자아를 잃는 것이다. 이제는 잘 사는 것 보다, 잠시 멈추고 깊이 생각하는 삶을 살 것이다. 필자는 성과사회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참고자료> 한병철. 김태환 옮김. (2012). 피로사회, 문학과지성사 한병철. 이재영 옮김. (2017). 타자의 추방, 문학과지성사 에리히 프롬, 김석희 옮김, (1965).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최원형 기자, 2020년 5월 15일 작성, 한병철 “성과에 집착 스스로 착취”, 신진욱 “그 역시 타인에 의한 착취”, 한겨레 (http://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32872.html#csidx334aac099dac44f8d25129adf80ef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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