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호위 중 사물과의 작별을 보고
주인공의 고모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셨지만 잊지 않고 간직해온 기억이 있었다.
바로 ‘서군’에 관한 추억이었는데 나는 처음에 서 군이 첫사랑이어서 못 잊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고모는 계속해서 그의 원고지를 기관원에게 넘겨서, 그래서 서 군이 잡혀갔다는 그런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모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그 기억 때문에 깨고 항상 마음에 짐처럼 죄책감을 앉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알츠하이머에 걸렸는데 서 군에 관한 내용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얼마나 서 군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원고지를 넘겼던 자신을 원망했으면 기억을 잃는 병에 걸려 가족을 잘 알아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 기억은 헷갈림 하나 없이 기억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죄책감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할머니가 암에 걸려 많이 편찮으셨다. 그때 우리는 다른 지역에 살고있었는데 엄마는 할머니 간호를 하시느라 매일 부산에 할머니가 계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셨다. 할머니는 동생과 내가 보고 싶다고 말씀 하셨다. 하지만 나는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토론대회 준비를 핑계로 가지않았다. 사실은 귀찮은 마음이 더 컸었다. ‘다음에 가면 되지.. 다음에’ 항상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으로 미뤘다. 그렇게 방학이 지나고 처음으로 동생과 같이 금요일에 할머니 병문안을 가자고 했는데, 목요일.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학교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있었는데 선생님이 나만 뒤로 부르셨다. “할머님께서..” 선생님은 할머니라는 단어밖에 꺼내지 않으셨는데 그냥 눈물이 흘렀다. 전교생이 앞에서 얘기하시는 교장선생님이 아닌 엉엉 울고 있는 나에게 시선이 모였었다. 눈물로 앞이 보이지 않는데 “국기에 대한 경례”로 가슴에 손을 얹고 우는 그 기억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로 소설의 고모처럼 잠을 자다 그 기억으로 울면서 잠을 깬 적도 여러 번이고 아직도 할머니의 산소만 들리면 나만 펑펑 운다.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가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왜 한 번을 못 가봤냐고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고모처럼 먼 훗날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잊는다 해도 이 기억 하나만큼은 못 잊을 것 같았다. 아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고모는 그 이후 서 군에게 찾아가 미안하다며 다 잊어 달라고 말하며 쇼핑백을 건넸다. 하지만 그 사과를 전한 이는 서 군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치매가 이제 마지막 남은 죄책감까지 번져갔다고 생각했다. 고모의 기억 중 가장 또렷하고 선명했던 건 소중한 가족도 아닌 죄책감이었다. 그 마지막 기억까지 점차 흐릿해지던 순간 고모는 점차 소멸되어간다. 나 또한 마찬가지 일 테다. 내 죄책감이 점차 가벼워지고 가벼워지다 못해 또렷했던 그 기억이 점차 흐릿해져간다면 치매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내 자신을 잃어 소멸될 것이다. 이 감정이 버거워도 항상 간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