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중략)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p.89~90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단 한 구절을 고르라면 바로 저 부분일 것이다. 나에게도 저런 경험이 있다. 20대 초반, 아직도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이유로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을 떠나야 했다. 내 삶의 전부 같았던 집단을 서로가 아닌 다른 이유로 떠나며, 나 또한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떠난 채로 떠나지 않았고, 떠나지 않은 채로 떠났다. 지금도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저며온다. 비록 지금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는 아니게 되었지만, 어딘가에서 잘 지내며, 내가 그러하듯 그들도 가끔 나를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의 잘못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서로가 그리운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소중한 관계의 부서짐이란 바로 이런 것을 의미하는 건가 하는 생각 역시.
책에는 그런 구절도 있다. 이십 대 초반에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었다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고,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는.
나 또한 저렇게 생각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관계의 첫 장을 넘기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워질 줄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전혀 몰랐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어떤 계산 없이, 그저 마음이 동하는 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많이 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그때 힘들었더라도 어떻게든 버티며 그 사람들을 붙잡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동시에 그런 생각도 한다. 아쉬운 상태로, 관계의 바닥을 못 본 채로 서로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리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계란 무엇일까 떠올린다. 서로에게 항상 그리운 존재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