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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구의 증명이었던가
Book name
저자/역자
최진영
출판사명
은행나무
출판년도
2015-03-30
독서시작일
2022년 10월 11일
독서종료일
2022년 10월 22일

Contents

누구를 위하여구가 죽었다고
 이름으로 그것을 증명해야 하는가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년 후라면 좋겠다.
천년토록 살아남아 

 시간만큼 너를 느낄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있으니까.


 년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글을 읽는다면,

 그때가   후라면 좋겠다.

구의 증명을 읽은 소감의 가장 첫째줄은 역시 나 ‘징그럽다‘인 것 같다. 사랑만큼 왜곡된 저주는 없다고 했던가. 이들의 사랑이 꼭 그렇다. 사랑이 이토록 처절하게 앓을 수 있는 거였던가. 고립된 너와 나의 우주에서 이렇게까지 타인이 관여할 수 있었던가? 

 구와 담의 사랑은 질척하다. 무척이나 담백한 듯 보이지만 그 속내는 마치 여름의 무르고 터져버린 복숭아 같다. 아프고 아픈데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곁에 아무도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이 세상에서 둘은 각자의 삶의 전부였다. 단 둘 뿐이어서 애틋했지만, 그래서 간절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몰아치는 삶 속에서 편안하게 등을 맡겨둘 곳이 서로에게 서로가 전부라, 둘 중에 하나가 함께하지 않는 삶은 지독히도 위태로웠다. 사랑하고 싶지 않더라도 사랑만이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둘의 사랑은 질척했다.

사랑이 단지 사랑일 수 없었던 이들, 사랑을 차마 사랑만으로는 부를 수 없었던 이들
이들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서로가 곧 서로의 삶이었던 이 지독한 사랑은 서로가 서로의 전부인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공허였을까. 

 왜곡되고 삐뚤어져 기나긴 나선형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 버린 사랑임은 자명하지만, 이 책은 사랑을 넘어선 수많은 감정들을 담고 있다. 사랑은 뭘까?

노마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고 
노마는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 어렸고 
노마는 죽지 않는  훨씬 자연스러운데 
그런데도 왜 죽었을까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노마인지 
어째서 죽어야 했는지
신만이 대답해줄  있는 그런 이유가

구는 길바닥에서 죽었다
무엇이 구를 죽였는가
나는 사람이길 원하는가

 죽음으로 서문을 시작하는 이 책은 사랑만큼이나 죽음에 대하여 서술한다.
 구는 왜 죽어야 했나. 소마는 왜 죽어야 했나. 담은 왜 그 수많은 죽음을 혼자서 감내해야 했나. 그들이 가난했기 때문인가? 그들이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인가? 그런 이유로 사람이 죽어도 되는 거라면, 고작 그런 게 이유라면 이 죽음에는 우리 모두의 몫도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죽음이 단지 이들만이 감내해야 할 몫이라 볼 수 있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그저 흘러가듯 사라지는 생명들이 너무도 많다. 뉴스에 한글자 올라가지 못한 채 그대로 잊혀져 버리는 삶이 너무도 많다. 죽음에도 가치가 있었던가. 누군가의 죽음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데 그 이면의 수많은 목숨들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쉬이 꺼져버리고 만다. 이런 기이한 현상들을 구의 증명은 계속해서 그려나간다. 

나는 많은 감정을 참고 살았다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버거웠다 

미래에 대한  근육은 
한없이 느슨하고 무기력했다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깊은 무력감에 빠졌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같고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같고그래서 이미   같았다

 구의 증명은 어둡고 슬프다. 하지만 구로부터 시작된 많은 것들과, 그런 구가 보이는 ‘증명‘들은 다시금 사회에 대한 사고를 자극한다. 가난은 외면한 채 취약계층을 멸시하는 우리가 구의 증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은 남들은 쉬이 떠올리는 미래와, 그 기약할 수 없는 수많은 내일들을 꿈꿀 수 없음에 있다. 꿈꾸는 것 마저 버거운 삶, 도전에 앞서 실패가 드리운 삶, 그런 삶들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나. \’구\’는 무엇을 증명하고자 했었나. 

 구의 증명은 사랑이라는 매개를 통해 삶과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불쾌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를 보고 불행을 마치 소비재로 전시한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 모든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다만,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왜 그들이 그런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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