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s

>>
Book Reviews
>
다정한 아포칼립스
저자/역자
김초엽
출판사명
자이언트북스
출판년도
2021-08-18
독서시작일
2021년 10월 01일
독서종료일
2021년 10월 11일

Contents

 2055년, 인류는 자가 증식하는 먼지인 \’더스트\’가 전 세계를 뒤덮은 멸망의 시대를 살아간다. 더스트는 노출된 지 몇 시간 후에는 바로 사망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인류에게 아주 치명적이다. 생사를 오가는 재난과 역경을 마주한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한다. 이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했다. 더스트에 내성을 가진 \’내성종\’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는 내성종으로,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랑카위 섬의 연구소에서 실험을 당하다 도망친 사람들이었다. 

 세상이 극단에 다다를수록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와 자비로움에 균열이 일기 마련이다. 더스트 시대는 더스트를 막아주는 \’돔 시티\’의 사람들과 그 바깥에서 살아가는 방랑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돔 시티의 사람들은 시티 밖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이었고, 돔 밖에서는 오래 살아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도중 연구소에서 도망친 나오미와 아마라는 말레이시아 케퐁 지역에 돔 없이 더스트 이전의 마을들처럼 살아가며 내성종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프림 빌리지\’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이 소설은 2055년 더스트 발생 시기와 더스트 종식 이후 현재 시점인 2129년이 주요 시대다. 2055년의 더스트 폴을 그대로 마주했던 나오미, 아마라 자매와 더스트 종식 이후인 2129년에 더스트 생태연구센터 식물생태팀에서 일하는 연구원 아영의 시점으로 전개가 된다. 또한 이 소설은 \’더스트\’라는 재난이 어떻게 해서 종식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역순환적인 구조로 진행된다. 그 의문 끝에는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존재한다. 모스바나는 더스트에 저항성을 가진 식물로, 실수로 더스트를 전 세계로 퍼뜨린 솔라리타 연구소의 연구원이자 프림 빌리지에 거주했던 사이보그인 레이첼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식물이다.

 멀게 만 느껴지는 두 시대는 \’이희수\’라는 인물로 인해 서로 연결이 된다. 이희수는 더스트 시대에는 프림 빌리지에서 \’지수\’라는 이름으로, 더스트 종식 이후에는 \’이희수\’라는 이름으로 \’온유\’라는 마을의 괴팍한 노인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이희수는 레이첼과 함께 프림 빌리지 최초의 구성원이었고, 프림 빌리지가 해체되는 그 순간까지도 프림 빌리지의 사람이었다. 이희수는 과거 어린 나오미에게 더스트 분해제 제조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모스바나를 전 세계로 번식하게 했으며, 더스트 종식 이후에는 온유로 이사 온 어린 아영에게 더스트 시대의 이야기를 해주는 다정한 노인이었다.

 소설 속 더스트는 2055년 더스트 폴 직후 급증하다가 2060년부터 더 이상 증가하지 않고 억제되며, 2062년 더스트대응협의체가 실시한 더스트 디스어셈블러 프로젝트 이후 급감하는 형태를 보인다. 2060년, 프림 빌리지는 해체되었고 프림 빌리지의 사람들은 레이첼이 만든 모스바나 식물을 가지고 세계 각지로 떠났다. 번식력이 높은 모스바나가 세계로 퍼지면서 더스트는 더 이상 이전처럼 급증하지 않았다. 더스트의 저항력과 분해 작용을 가진 모스바나로 인해 더스트가 증식을 멈춘 것이다. 모두가 디스어셈블러 프로젝트로 인해 더스트가 종식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말레이시아의 작은 지역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았던 \’소수의 사람들\’과 \’식물\’이 재난에서 인류를 구한 것이다.

 작가는 \’온실의 모순성\’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이는 자체로 더스트 재난 시대에 세상을 구한 \’모스바나\’라는 식물과 닮아있다. 레이첼에 의해 인공적으로 생산되었지만, 시대에 적응하면서 독성을 줄이고 돌연변이를 상실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습득하면서 모스바나는 스스로 종의 번영을 이루어 냈다. 인류와 공존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스스로가 살아갈 길을 개척해나갔다. 더스트 시대는 기계적이고 딱딱하며 건조한 것들에 기대었지만, 정작 세상을 구한 것은 숨 쉬는 식물들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을 \’다정한 아포칼립스\’라고 칭하고 싶다. 단어들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세상의 멸망을 그린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어떻게 다정함이라는 단어와 어울릴 수 있을까. 하지만 작가는 그 모순성과 조화로움을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관에서는 사이보그, 외계인 등 딱딱하고 인공적인 주제가 인간과 사회라는 지극히 감정적인 것들과 어울리며 두 주제의 공통점과 모순을 포근한 언어로 전달해준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공상 과학 소설이 먹먹함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란다. 사이보그 레이첼과 인간인 지수의 사랑, 아이였던 나오미와 마을을 책임지던 어른인 지수의 간절한 약속, 마을 사람들이 떠나면서 보내는 신뢰와 서로를 생각하는 다정함이 이 아포칼립스 세계를 구원한다. 척박함 속에서도 작지만 단단한 것들이 세상을 구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깨닫는다. 모스바나가 더스트 시대를 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소설은 현재와 같은 시대에 다시 한 번 작고 단단한 것들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임을 상기시켜준다. 서로를 지키는 포근함, 따뜻함, 말 한마디, 웃음, 함께한다는 느낌, 온기. 이런 것들에 몸과 마음을 기대어 본다. 

Full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