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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넘어선 무의식적인 사랑
저자/역자
박희병
출판사명
창비
출판년도
2020-10-30
독서시작일
2021년 11월 10일
독서종료일
2021년 11월 13일

Contents

나는 21살이다. 누군가는 이 나이를 새파랗게 어린 청춘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다 큰 성인이라 부른다. 서서히 세상의 밝은 면이 아닌 어두운 면을 마주하기 시작하고,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다. 나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그 중 하나였다.

어떤 이는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다고, 그래도 이번 생에 엄마가 준 사랑을 다 갚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엄마’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놀랄 때도, 울 때도, 행복할 때도 엄마를 부른다. 세상에 나와 가장 처음 본 사람이, 열 달 동안 나를 품어준 사람이 엄마였기 때문일까. 최근에 장례에 관한 글을 하나 보았는데 문득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생생히 느껴보고, 대비하고 싶었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인상 깊은 내용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호스피스 병동 의료진들의 태도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본래 취지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과 불편을 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의료진의 패러다임과 해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무래도 의료진과 보호자는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료진은 환자를 이해하기 보다는 처치하는 대상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고, 보호자는 환자를 인간으로 여기고 대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게 되니까 말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병동의 환자와 조금이라도 편안한 죽음을 목적으로 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스피스 병동 의료진들은 마땅히 환자에 대한 윤리의식과 헌신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이라는 큰 고통을 감내하고 계셨지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주체성을 끝까지 놓지 않으셨다. 대개 인지저하증이라고 하면 본능을 이기지 못해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어머니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자식이 힘들 것을 걱정해 본인의 욕망을 억제하고 “오지마라. 힘들다.”라는 말까지 하셨다. 물론 이는 환자마다 다르겠지만 이 책을 보다보면 나도 저자와 함께 깜짝 놀라게 된다.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가족과 자식을 향한 걱정과 사랑은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 무의식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것이든 편견을 깨는 사례는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 저자는 말기암 환자와 인지저하증 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바뀌어야 한다고 그토록 외치고 있는 것일 테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호스피스 병동의 시스템과 문제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나의 문제 제기로 인해 환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오기 전에 더 나은 방향으로 이 환경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반복해서 언급해 왔던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사회의 편견에 대해 우리는 좀 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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