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Reviews

>>
Best Reviews
>
'나'와 '너'를 가르치는 것
저자/역자
Van Manen, Max,
출판사명
학지사 2012
출판년도
2012
독서시작일
2020년 11월 07일
독서종료일
2020년 11월 07일

Contents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한 강연 프로그램에서 중학생 아이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에 들어와 처음 치른 영어시험에서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단어가 나와 시험을 망쳤던 기억이 있다고. 학교 시험은 학교 수업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평가하는 것인데 왜 배우지 않은 내용들이 나오고 학생들은 당연한 듯 사교육을 통해 그것을 메우려고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아마 입시 위주로 돌아가는 경쟁적인 한국 교육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OECD 가 2018년에 발표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는 읽기, 수학, 과학 성취 수준은 OECD 회 원국 포함 전 세계 79개국 중 최상위권이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 지수는 6.52로 전체 71개국 중 65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러한 교육 상황 가운데 많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왜 하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 답할 수도 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그러나 이렇게 평가와 줄 세우기로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교육 시스템에 속해있는 한, 공부는 수단이 될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정작 나 또한 이러한 질문들을 생각해볼 틈 없이 자라왔던 것 같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성적 순으로 정독실을 나누고 시험기간이 되면 새벽 두 세시까지 공부하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입시를 향해 달려왔던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지금, 교양수업을 통해 읽게 된 이 책은 나에게 공부와 교육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경쟁 사회에서 자라온 우리들은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쳐야 할까. 이 책의 저자는 행위의 교육적 의미를 재고하며 우리에게 그 방향을 제시한다. 

지켜본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저자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단 것을 경험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지켜본다는 것은 아이에게 나라는 존재, 학습자로서의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줌과 동시에 선생님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지켜본다는 것은 곧 학생과의 소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학생들은 수업마다 교실을 옮겨 다니고, 선생님들은 수백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더 넓게 나아가서는 늘어나는 맞벌이로 인해 어른들의 시선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이 지켜봄의 가치란 더욱더 소중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내려본 지켜본다는 것의 의미는 아이들 각각의 존재를 인지함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귀 기울이고 반응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싫든 좋든,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어른은 아이에게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사례이자 행위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는 이런 모델링 과정을 학습한다. 하지만 교사로서 생활하는 방식과 자신의 삶이 서로 모순된다면, 교사의 존재는 거기 없는 것이며 실제로 학생에게 교사는 부재중인 것이다.
독일어에서 학습은 가르침과 배움을 포함하는 의미라고 한다. 어원상 배우다, 즉 to learn은 먼저 지나간 이의 과정, 길,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도록 이끄는 교사나 부모는 배우고 있는 학생보다 나은 학습자여야 한다. 나는 여기서 교사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하나의 사례로 존재하며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역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분위기가 교육적인 것이었다. 저자는 가르침은 단순히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정서적이고 관계적이기 때문에 분위기를 탄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가정, 교실, 학교마다 각자의 분위기가 있다고 말하며 분위기에 따라 학생은 장소를 다르게 느낀다고 말한다. 나도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에 제일 싫어했던 과목인 수학 교실에 들어섰을 때와 좋아했던 장소인 도서관에 들어설 때의 느낌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가정에서 또한 그럴 것이다. 가정이 어떤 분위기냐에 따라서 집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집이 기피하는 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분위기는 공간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방식이고, 또 분위기는 아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어떤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들은 우리에게 교사와 어른이란 무엇이고 가르침을 위해서 어떻게 자신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무엇이든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한계점 또한 존재한다. 경이로움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면서 저자는 얼토 당토 않은 질문을 하는 아이가 조숙한 호기심을 가졌다고 보며 어린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꼭 아이들이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질문만을 던져야 하는 걸까? 내가 도입부에 언급한 강연 프로그램에 나온 중학생 아이도 이런 말을 했었다. 원래 이 나이 땐 쓸데없는 걸 하고 사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어른의 시선으로 볼 땐 얼토당토않은 질문들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편견이 없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엉뚱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고 그 질문들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되기 도 하고 어쩔 땐 어른들의 허를 찌르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사 중심의 수업으로 학생들이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차라리 더욱더 많이 질문하고 교사와, 부모와, 소통하며 지켜봄을 경험하고 성장해나가는 것이 더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희망으로 사는 것에 대해 얘기하며 아이들에게 희망적인 삶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보여주지 않을 때 우리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무책임한 사람은 모든 젊은이를 냉소적으로 만드는 사람이자 희망이 없는 사람이고, 공동체 의식을 배우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자 삶의 모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다소 격하게 단정 지어 말한다. 팍팍한 사회 때문에 변한 사람들도 있을 텐데 개인에게 문제를 삼기보다는 먼저 이들을 암울하게 만든 사회 전체의 책임이 있을 텐데 말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의미 있는 이유는 어른이자 교육자로서의 역할과 아이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소통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해보았다. 나는 이전에 내 미래 중에 하나로 교사라는 직업을 그려보며 교사란 아이들의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와 본성인 셀프 사이를 균형 있게 유지하며 올바른 사회인으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그 역할이라고 보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이뿐만 아니 라 아이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인격적으로 잘 성장할수록 보살피며 그를 통해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더 나은 어른이자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자기 스스로를 교육하는 것 또한 가르침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겠다. 내가 사는 인생이 누군가에게 한 사례가 될 수 있으니까. 

Full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