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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을 위한 상실喪失
Book name
저자/역자
Ness, Patrick,
출판사명
웅진주니어 2012
출판년도
2012
독서시작일
2020년 10월 16일
독서종료일
2020년 10월 16일

Contents

어느 책과의 만남도 모두 우연으로 시작된다. 그 시간, 그 책장, 그 앞에 서서, 하필 그 날 내 앞에 나타난 흑백 표지의 책은 강렬하게 나를 끌어당겼다. 이끌림에 몸을 맡기고 책 앞에 서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부른다. 시온. 책을들어 올릴 때 나에게 더욱더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래, 시온.

 

책은 코너가 몬스터의 존재를 느끼면서 시작된다.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몬스터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에 코너는 창밖을 내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간절히 보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악몽, 그리고 그 악몽보다 더 악몽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코너의 삶이 소설에서 전개된다.

 

코너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라났다. 이혼한 아버지는 미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엄마는 오랜 기간 동안 암 투병 중이다. 도와주기 위해 찾아오시는 외할머니는 권위적이며 깐깐하기 그지없으며, 학교에서는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고 있다. 어느 하나 괜찮아 질 것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몬스터는 찾아와 말한다. “이제부터 찾아와서 3가지 이야기를 해 줄 거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네가 4번째 이야기를 하게 될 거다.” 4번째 이야기가 코너가 감추고 있는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진실임을 말하며 사라진다.

 

이 후 몬스터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코너가 겪고 있는 상황들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서술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엄마의 상황이 악화되어 깐깐한 외할머니가 집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아비를 잃은 왕자가 마녀에게 대항하는 이야기. 이야기에서 마녀는 왕국을 계속 지배하려 왕자와 결혼하려 했고, 왕자는 농부의 딸을 죽인 후 마녀에게 누명을 씌웠다. 코너는 이야기 속에서 마녀를 비난하지만 몬스터는 절대선이나 절대 악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마치 코너가 외할머니를 적대하고 배척하려 하지만 외할머니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얘기하듯 말이다. 하지만 코너는 여전히 어린아이의 눈으로 선과 악이 명확하지 않은 세상을 바라보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버지가 미국에서 찾아온 후에 몬스터가 얘기한다. 탐욕스러운 인간에 관한 이야기로 치료를 해주지만 욕심이 많아 과한 돈을 요구하는 약제사, 믿음에 기대어 살아왔지만 두 딸 아이를 잃을 수 있는 역경을 맞닥뜨리자마자 믿음이 가장 절실히 필요할 때 저버린 목사의 이야기다.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 아버지와 다른 사람의 입장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먼저인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코너와 비슷하다.

 

학교에서 코너를 괴롭히던 해리가 코너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하겠다고 했을 때 몬스터가 마지막 이야기를 해주러 나타난다. 이야기에서 투명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이 힘들어 보이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더 멀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코너가 해리를 폭행한 이후에 주변사람들과 더 멀어지게 된 것과 같이.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은 코너의 상황과 맞물려 4번째 이야기로 코너를 인도한다.

 

세 번째 이야기 이 후, 어머니의 병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다. 마지막까지 미루던 치료마저 먹히지 않게 되고 코너는 슬픔과 분노에 뒤덮인다. 코너는 몬스터에게 달려가 외친다. 도대체 왜 왔냐고, 네가 온 이유는 엄마를 낫게 하려고 함이 아니냐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몬스터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신이 온 것은 코너, 너 자신을 낫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러고 갑자기 악몽이 반복된다. 악몽은 가장 완벽한 순간에 다다르며 코너는 진실을, 언제나 알고 있었지만 외면한 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자신이 악몽의 마지막에 엄마의 손을 놓아버린다는 진실을. 소년이 감당할 수 없던 무게를 엄마를 잃는 것을 앎에도 그저 다 끝나길 바란다는 진실을 마주한다.

 

울부짖는 코너에게 몬스터는 삶은 행동으로 쓰는 것임을 알려준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함을 알려준다고. 이 말을 듣고 나서 코너는 지쳐 쓰러진다. 그 날 저녁 울며 주목 밑에 잠든 코너를 외할머니가 찾아내어 급하게 병원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코너는 진실을 말한다. “엄마를 보내기 싫어요, 엄마를 보내기 싫어요.” 소설은 코너가 엄마의 손을 꼭 잡으며 마무리 된다.

 

책은 한 소년의 성장을 모순으로 접근하여 설명한다. 모순은 코너가 몬스터와 처음으로 조우 할 때부터 나타났다. 몬스터가 나타날 때 코너는 창밖을 내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간절히 보고 싶어 했다. 이후 몬스터가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모순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왕손은 살인자이지만 구원자였고 마녀는 선이기도 악이기도 했으며, 목사는 생각이 잘못되었으나 선할 수 있었고, 약제사는 성질이 고약하면서도 생각이 바를 수 있었으며, 보이지 않았던 사람은 보이게 되었을 때 더 외롭게 되었다. 몬스터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은 모순된 존재임을 알게 되고 이는 코너가 하는 네 번째 이야기, 엄마가 치료되기를 바라지만, 엄마를 잃더라도 이 모든 고통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소설은 모순 속에서 그려진다. 그리고 이 모순에서 코너는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모순이 가지는 작음 틈에서 진리가 나오고 그 진리로 사람들은 성숙한다. 끊임없이 엄마의 죽음을 부정하고 부정하던, 악몽 속에서 엄마의 손을 결국 놓아버리는 코너가, 마지막에 울부짖으며 자신의 악몽을 인정하고 병실에서 엄마의 손을 붙들며 엄마를 보내기 싫어요.”라고 말할 때 코너는 그제야 엄마를 꽉 잡음으로 놓아줄 수 있었다. 어른이라 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아이라 하기에는 세상을 알아버린 코너는 소설의 끝에서 결국 한 소년이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한 사람이 성숙하는 것은 모순 속에서 틀을 깨고 한 단계 성장하는 것임을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몬스터 콜스]를 읽으면서 크게 두 가지 의문을 가졌다. 하나, 몬스터는 무엇인가? , 왜 하필 주목인가? 처음에는 몬스터의 존재에 대해서 단순히 악몽이라 서술된다. 코너도 생각할 수 있듯이 몬스터란 어리아이의 허구 속에서 만들어진 공포심에 집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몬스터와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근본적인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몬스터가 과연 악몽에 불과한 허구인가? 몬스터의 방문 이후 주목 열매들이 잠기어진 창문 안으로 들어와 있었고 마룻바닥에는 옹이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의문은 두 번째 이야기에서 몬스터가 목사의 집을 부슬 때도 이어진다. 목사의 집을 몬스터가 파괴한 이후 코너는 자신이 서 있는 외할머니 집이 박살나 있음을 인지한다. 이 후 투명인간 이야기에서 몬스터가 주먹을 날렸을 때 코너는 자기 손에서 통증을 느낀다. 이 시점에서 몬스터는 코너의 한 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깨달아야하는 깊은 내면에 있는 진심이 바로 몬스터였다. 혼란스러움 속에서 나타나는 파괴, 고통 속에서 나타나는 슬픔, 그리고 모순 속에서 나타나는 진리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 누구나 품고 있었던 몬스터인 것이다.

 

몬스터는 왜 하필 주목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목의 꽃말을 들여다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주목의 꽃말은 비애와 죽음이다. 어린 아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비애는 의지할 수 있는 부모님을 잃는 것일 것이다. 부모님을 잃는 것이 사별로 인한 것이라면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주제를 받고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이라고는 엄마가 암에 걸렸다고 말해주기 하루전날 웃었던 기억 밖에 없던 코너가 겪은 비애와 죽음을 표현할 수 있는 나무가 주목 나무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다. 주목의 또 다른 꽃말로 고상함이 존재한다. 고상하다, 높이 날아오르다. 죽음은 남겨진 이에게 비애만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또한 쥐어준다. 코너는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단순히 슬픔에 잠기는 것이 아닌 자신을 성찰하며 어른으로 성숙하는 단계를 밟는다. 한 소년의 슬픔과 성숙까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기에 주목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겪는 감정이 바로 상실감이다. 상실감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코너와 같이 중요한 사람을 잃는 죽음에 의한 상실뿐만 아니라, 물질적 상실, 인간관계의 상실, 심적 상실 등 다양한 상실감과 사람은 마주한다. 하지만 패트릭 네스가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이 상실감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 성숙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사람은 상실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상실감을 극복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망이나 목표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성숙하게 된다. 그렇기에 상실을 겪고 있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부정이 아니다. 몬스터가 왜 걸어왔는지 모르는 척 회피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진실을 바라보고 부끄러움, 슬픔과 분노를 모두 안고 담담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가야하는 것이다.

 

책에 구절로 마무리하고 싶다. ‘코너는 지금이라는 걸 알았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무얼 바라든 어떤 심정이든 간에 결국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기가 이겨내리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픔은 끔찍하다. 끔찍한 것 이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 몬스터는 우리를 찾아온다. 우리가 버틸 수 있도록 분명히 몬스터는 찾아온다. 우리는 아픔을 견뎌내고 또 성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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