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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저자/역자
김자문자
출판사명
이학사 2012
출판년도
2012
독서시작일
2017년 08월 31일
독서종료일
2017년 08월 31일

Contents

얼마 전 조선인 아나키스트였던 박열과 그를 사랑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를 다룬 영화 <박열>을 보았다. 영화나 각종 소개글은 박열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독립적인 인물로서 가네코 후미코에게 큰 매력을 느꼈고, 그녀가 궁금해져 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수기는 전체의 2/3 정도가 일본과 조선을 오간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나머지는 일본으로 돌아와 고학을 하며 박열을 만난 때를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결국 제목처럼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답이다. 영화는 박열을 만난 이후의 모습만을 보여주지만 책을 통해 그녀의 지난 삶을 앎으로써 아나키스트가 된 계기와 그녀의 가치관, 신념, 생각의 결을 더 깊고 섬세하게 할 수 있었다. 아나키스트는 흔히 ‘무정부주의자’로 번역되나 이는 근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번역이라고 한다. 이보다는 폭력과 차별, 억압을 만들어내는 모든 권위와 이념에 저항하고 이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사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떤 차별과 억압을 겪었고 무엇에 저항하고자 했는가.

 

 그녀의 지난 삶, 특히 어린 시절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외도를 일삼는 아버지(심지어는 엄마의 여동생과 살림을 차린다), 아버지와 헤어진 후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의존적인 모습을 보였던 엄마. 불안정한 가정과 가족관계 속에서 후미코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또한 무적자라는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공부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조선으로 건너가며 새로운 세상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후에 일본으로 돌아갈 때 후미코는 그곳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할머니와 고모에게 식모 내지는 노예 취급을 받으며 학대와 굶주림, 정신적 고통을 견뎌야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 이런 생활은 일본에 돌아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물건 거래하듯 혼담이 오가기도 한다. 그녀는 수기에서 “이 글을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가, 부모가 만든 환경이 아이의 정신과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부모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후미코의 삶을 휘둘렀기에 그녀는 이로부터 간절히 벗어나고자 했다.

 일본으로 돌아와서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밤낮으로 일 하며 틈틈이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고학을 이어나가지만 당장 먹고 사는 문제, 가난에 직면하게 된다. 곧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이 사회에서 자신은 결국 계속해서 가난한 고학생으로 남을 뿐이란 걸 깨닫게 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종교나 사회주의 사상에 가까워지기도 하나 이 또한 자신의 이념과 다르다고 느낀다.

 

 “이렇게 나는 신을 따르고 사람들에게 봉사하였다. 하지만 대가는 전혀 없었다. 나는 이미 3일이나 굶고 있었다. 게다가 또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그 일거리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물론 집세를 치를 수가 없었다.” (<노점상> 中)

“하지만 실제로 나는 결코 사회주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사회주의는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사회의 변혁을 구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하는 바가 진실로 민중의 복지가 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의문이다. ‘민중을 위하여’라고 하며 사회주의는 동란을 일으키리라. 그리하여 사회에 하나의 변혁이 도래했을 때 과연 민중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지도자는 권력을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다시 그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XX[혁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권력을 대신하여 다른 권력을 가져오는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거리의 방랑자> 中)

 

 공부와 종교, 사상이 실질적으로 삶에 도움이 되는지, 내 삶을,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 후미코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것, 진정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요즈음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내게 ‘나는 나 자신이이어야 한다’는 이 단단한 자기 다짐은 큰 감명을 주었다.

 

“남들이 훌륭하다고 하는 일에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나는 남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게 아닌가. 나는 나 자신이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나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 나 자신의 일을 찾아!> 中)

 

 그리하여 후미코는 아나키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책을 통해 그녀의 삶을 돌아보며 온 세상에 거부당하는 느낌, 두 발 딛고 숨 쉬며 살아가고 있지만 존재를 부정당하는 듯 한 기분을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불행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과거의 모든 것에 감사한다. 나를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지 않게 하고 가는 곳마다 생활의 모든 범위에서 괴롭힐 만큼 괴롭혀준 나의 전 운명에 감사한다. 외냐하면 만약 내가 아무 어려움 없이 컸다면 나는 내가 그렇게도 미워하고 경멸하는 그런 사람들의 사상이나 성격이나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나 자신을 찾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이 나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은 덕에 나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도쿄로!> 中)

 

 자신의 삶에 후회 없고 부끄러움이 없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종종 이미 한 것에 대한 후회, 그리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로 밤잠을 설친다. 후미코가 자신의 과거에 감사할 수 있는 건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 당당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녀의 서술에서 드러나는 아주 단단하고 깨끗한 신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강인한 사람이다. 몸으로 직접 체득한 것에서 나오는 진심이기에 울림이 크다.

 수기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그 날의 분위기와 대화내용, 풍경, 날씨까지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녀의 삶은 마치 소설과 같았다. 아니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고난과 역경,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남은 강한 의지, 극적인 삶의 순간들… 당사자의 온전한 감각으로 전해 들으니 더 절절하게 와닿았다. 아이라서, 여자라서, 가난해서 겪어야했던, 그녀의 운명을 휘둘렀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은 어쩌면 그녀를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으로 이끌어준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과 연결점이 없던 무적자와 자유를 갈구하는 아나키스트는 서로 맞닿은 면이 있어 보인다.

 

 영화에서 후미코가 박열의 ‘개새끼’라는 시를 읽고 크게 감명 받아 그에게 동거를 제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흥미와 호기심 정도의 감정으로 그려지나 책을 통해 들여다보면 그녀가 개에 대한 특별한 감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 학대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갈 무렵 그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 받기도 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밥도 먹지 못하고 집 밖으로 쫓겨나 있을 떄 마치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알아주는 듯 꼬리를 흔들고 다가왔던 그 개를 항상 스스로와 연관 지어 ‘같이 학대받고 고통받는 가장 불쌍한 동포같은 존재’라 생각했다고 한다. 아마 박열을 향한 그녀의 마음에는 사랑 뿐 아니라 그러한 감정 또한 함께였던 것이 아닐까.

 지금 나는 그녀가 살던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진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하고 여전히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난과 억압, 차별, 정의와 같은… 그녀가 기르던 개에게 감정을 이입하였듯이 나 또한 같은 여성으로서, 20대를 지나고 있는 청년으로서, 그녀에게 시대를 넘어 공감과 연민을 느낀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짐했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나 여운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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